평행선과 멀미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의 음반을 들으며 그가 사진 작가라는 사실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듯이, 흰 침대보 위에 널브러진 육감적인 과일들이나 빛을 뿜는 복사기 안쪽이나 클럽에서 키스 중인 게이 커플의 열정적인 옆얼굴 같은, 사각 프레임 안에 고정된 순간의 정동이 비트에 맞추어 되살아나듯이, 어떤 청취의 시간은 이미지와 평행선을 그리며 나아간다.

어린 시절 여행을 좋아하는 부모님에 의해 주말마다 승용차 뒷좌석에 실려다녔다. 나는 멀미가 심했기 때문에 차에 타는 일만으로도 지치곤 했다. 크면 나아질 줄 알았지만 점점 더 심해져서 이제 나는 내가 운전하는 차에서도 멀미를 한다. 지금은 웬만하면 소형차를 타지 않는 쪽을 택하여 멀미와 타협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때는 어떻게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멀미를 견디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은 창문을 여는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은 창밖 풍경의 리듬에 맞추어 음악을 듣는 것이다. 눈을 감으면 멀미의 감각에 집중하게 되기 때문에 반드시 무언가를 쳐다보아야 했고, 음악을 집중해 들으며 감각을 분산시키는 일도 도움이 되었다.

앞자리에 앉은 부모님의 뒷모습 너머로 유재하, 김광석, 동물원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풍경은 차가 달림에 따라 계속해서 변주되었다. 차의 속도와 창밖 구성물들의 모양과 크기, 그들의 배치 방식에 따라 장면의 리듬은 변화했고, 나는 들려오는 음악에 맞추어 시선을 여러 대상들에게로 옮겨두면서 눈으로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 빗방울과 간판, 한강 다리와 나무들이 목소리와 리듬에 맞추어 지나갔다.

올봄 드레스덴에서 열린 볼프강 틸만스의 개인전에서 [Build From Here] 음반의 뮤직비디오를 보았는데, 어린 시절의 내가 만들었던 풍경 뮤직비디오와 유사한 방식으로 제작된 것이 아닌가.

맑은 아침에 그의 일렉트로닉 음악을 들으며 러닝을 한다. 오늘은 수면 위에서 미러볼처럼 빛나는 태양의 반영을 보았다. 잘 어울리는 리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