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하지 않는 빛
눈을 뜨면 언제나 환한 방에 있다. 감고 뜸 사이에 어떤 간격이 있다 해도. 몇 번째로 눈을 떠도. 너의 시선을 막을 수 있는 장애물은 눈꺼풀뿐이다. 너의 눈길을 덮을 수 있는 물질은 눈꺼풀뿐이다. 너의 눈꺼풀은 밤보다 쉽게 찢어진다. 너의 조그만 눈꺼풀이 천지를 덮는다. 너의 눈꺼풀은 사이라는 장소에 잘 어울린다. 너의 눈꺼풀은 어둠보다 얇고 부드럽다. 너의 눈꺼풀은 네가 만져본 살아 있는 것들 중 가장 위태롭다. 끔찍할 정도의 연약성. 너는 그런 것을 믿기를 잘한다. 얼굴을 낭비하는 만큼 잠을 낭비하고 싶지만 너의 얼굴이 사랑받는 것 이상으로 너는 잠을 사랑한다. 너는 언제나 밝은 방에서 여러 개의 창을 틀어 놓고 있다. 1윤원화 발표문 「언제나 밝은 방에서 여러 개의 창을 틀어놓고」〈제 1회 오픈 스페이스: 영화를 가르는 패스〉(2022.4.16) 좋은 관객이란 잘 망각하는 사람이다. 프레임 바깥을 보려 하지 않는 사람. 프레임 바깥을 빠르게 잊는 사람. 너에게 아름다움은 피로일 뿐이고 너는 그것을 지우고 싶다. 기억은 망각의 기술이다. 2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세계는 계속된다』, 박현주 옮김, 알마, 2023. 스크린을 지울 수 있는 것은 스크린뿐이다. 스크린을 짓누르는 것은 스크린 곁의 스크린이 가진 빛이다. 시간 자체를 원하는 사람들이 스크린 앞으로 모여든다. 여전히 방은 너무 환하고, 암막 커튼은 프레임을 만드는 가장 가볍고 얇은 물질이다. 잠의 입장에서 보면 너는 질 나쁜 관객이다. 너는 몸 뉘는 법을 배운 적 없는 사람처럼 어색하게 삐걱거리며 아무 곳에나 아무렇게나 눕는다. 갓 태어난 것도 아니면서 어떻게 그렇게까지 서툰 움직임을 가질 수 있는 걸까. 갓 태어난 인간 역시 눕기에 한해서라면 너보다 훨씬 능숙하게, 보는 눈들을 편안하게 다루는 동작으로 움직일 것이다. 너의 눕는 동작은 어딘지 압도적인 데가 있는 서투름이다. 네가 눕는 장면 앞에서는 누구라도, 홀린 듯이, 자기 눈을 믿지 못하게 되고 불안에 사로잡히게 되고 눈을 뗄 수 없게 된다. 너는 잠을 배우고, 창문을 배우고, 형식을 배우고, 프레임을 배우고, 모든 것을 잊기를 배운다. 네가 배우거나 배우지 않은 모든 것을 잊는다. 세계는 돌이킬 수 없음을 뜻하는 말이다. 너는 시간을 너무 사랑해서 그냥 겪을 수가 없다. 아주 조그마한 시간도 포대기에 싼 아기처럼 다루기를 원한다. 시간을 안고 있는 팔에 온 신경이 쏠려 언제나 머리가 아프다. 시간을 안고 걷는 너는 지면이 가진 모든 질감을 지나친 자극으로 느낀다. 여기서 내려가야 누울 수 있다. 너는 발바닥을 통각을 뭉쳐 만든 물질로 실감하면서 양팔에 조그만 시간을 안고 걷는다. 내려간다. 밤새 내려갔다고 생각했는데 해가 뜨고 보니 정상의 너럭바위에 누워 구조를 기다리고 있더라는 조난자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귀는 먹먹하고, 다 내려왔다고 생각한 곳에는 입구 하나가 있다. 문지기는 그것이 잠의 입구라고, 이 입구를 지나 쭉 내려가라고 한다. 입구란 으레 그렇듯 잠의 입구 역시 특별히 작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내부가 필요로 하는 것이 지나가기엔 미묘하게 작고, 결국 아주아주 작은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입구는 조그맣고 무시무시하고 귀엽다.
문지기는 이런 입구도 사랑의 한 가지 양식이라고 한다.
우리가 다른 꿈으로 돌아가더라도
우리가 같은 꿈으로 돌아가더라도
같은 피로에 절어 있다 해도
디테일이 다른 생활이 우리를 짓누른다 해도
눈을 감은 채로도 방은 환하고
창이 많고
네가 보는 것을 나도 본다.
잠에서 깬 너는
도굴꾼에게 싹싹 비워진 무덤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 윤원화 발표문 「언제나 밝은 방에서 여러 개의 창을 틀어놓고」〈제 1회 오픈 스페이스: 영화를 가르는 패스〉(2022.4.16)
-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세계는 계속된다』, 박현주 옮김, 알마,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