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들
경계를 건너며 떠는 사람아. 1“경계를 건너며 떠는 사람은 자신이 아는 정의에 의문을 던집니다. 여권에만이 아니라, 운전면허증에만이 아니라, 그 정의의 모든 측면과 형식에 대해서요. 우리가 거의 얘기하지 않는 나이의 정의에서부터 내내 우리와 관련되면서도 동시에 대답할 수 없거나 하지 않는 성별의 정의까지요. 우리는 어떤 ‘자연’입니까? 우리는 어떤 ‘종’입니까?” (엘렌 식수,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 신해경 옮김, 밤의책, 2022). 당신은 떨면서 보고 떨면서 듣는다. 떨면서 본 것이 당신의 상상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두려워한다. 두려움 속에서 떨며 움직인다. 몸은 남고 움직임은 사라진다. 도시의 모든 구조물들이 말하지. 당신은 이곳을 건너갈 수 없습니다. 당신은 앉거나 누워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앉은 채로, 누운 채로 떨면서 경계를 건너려 한다. 당신은 의미를 요구하지 않는 형태만을 이해한다. 당신의 손은 아무것이나 주워서 아무렇게나 빚는다. 괜찮아, 알아볼 수 없는 형태라면 뭐든 좋아요. 유령이라고 둘러댈 수 있는 형태라면. 유령처럼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은 형상이라면. 무덤 같고 굴 같은. 굴속의 쥐들 같은. 쥐들이 파묻힌 굴 같은. 세계를 삼킨 굴 같은. 수많은 굴에 관통당해 우글거리는 세계 같은. 우린 굴을 파기 좋은 재료만으로 도시를 빚었지. 이 도시에선 어디가 어디로 이어질지 아무도 모르지. 적어도 잠에서라면 세계는 굴이나 마찬가지. 좁다랗게 깊어지는 방식으로 넓어질 수 있다. 굴을 파며. 굴과 굴 사이를 허물어 회랑으로 만들며. 공간을 무화시키며. 벽을 길로 만들며. 세계를 통로로 만들며. 진흙으로 구조를 만들며. 구조는 부드럽고 차가웠다. 쉽게 파헤쳐지고 흩어졌다. 우리를 쉽게 더럽혔고 더러운 우리를 익숙한 것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깨진 돌처럼 지면에서 솟아오르지. 우리는 공간에 새겨진 형태를 떨면서 넘어 다닌다. 종이를 접고 펼치듯이 누울 자리를 만든다. 구깃구깃한 잠을 펼친다. 깨끗한 이불 아래서만 우리의 몸을 실감한다. 미약하게 미약하게 움직이며. 손톱 밑으로 파고드는 도시의 구조물들을 느끼며. 일주일에 두 번, 손톱 밑에 낀 세계를 깨끗하게 깎아내며. 조금씩 깊어지는 굴을 만지며. 우리는 먼지투성이 머리통으로 서로를 사랑한다. 희미한 먼지를 알아차리듯 사랑한다. 먼지투성이 땅을 뒹굴며 부수듯이 사랑한다. 우리는 서로의 무릎이 남긴 궤적에 이끌린다. 아무 데서나 만난다.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면서 만난다. 이름도 없이 만난다. 잔해로만 남은 시간들 속에 만난다. 매캐한 공기 속에서 서로를 보지 못하면서 만난다. 우리는 서로를 돕지 않는다. 만나고 함께 있을 뿐이다. 서로의 입구가 되어줄 뿐이다. 우리는 누더기가 된 무릎으로 만난다. 너저분하고 단단한 손끝으로 닿는다. 굴을 파고드는 바람 소리에서 예언을 듣는다. 떨면서 벽을 무너뜨리고 굴이었던 회랑을 따라 걷는다. 열리고 비어 있는 공간. 경계를 무화시키는 공간. 공간을 무화시키는 움직임. 없는 공간과 없는 구조가 떨면서 말을 건네지. 기억하세요. 깨끗한 이불을 덮고 우리가 기억하는 일들의 돌봄 속에서 지나가는 시간을 느껴보세요. 손안에 사는 쥐 한 마리씩을. 햇빛이 관통하자 손은 반투명한 물질처럼 보였지.
너는 그런 것을 보는구나
다 알고 싶었어
손안에 죽은 것이 있다는 느낌
그거 내가 대신 봐줄게
회랑의 어둠이 가늘게 떨린다
모두 기도할 때 우리가 뜬 실눈들 2 “다들 기도하고 있었지만/나는 실눈을 뜨고 있었어요.” (조월의 노래, 「후문」, 『아무것도 기념하지 않는』, 2022).
떨며
새어 나온 빛이 경계를 넘지
우리는 손바닥을 펼치며 만났지
죽은 눈이 푹푹 날렸어
- “경계를 건너며 떠는 사람은 자신이 아는 정의에 의문을 던집니다. 여권에만이 아니라, 운전면허증에만이 아니라, 그 정의의 모든 측면과 형식에 대해서요. 우리가 거의 얘기하지 않는 나이의 정의에서부터 내내 우리와 관련되면서도 동시에 대답할 수 없거나 하지 않는 성별의 정의까지요. 우리는 어떤 ‘자연’입니까? 우리는 어떤 ‘종’입니까?” (엘렌 식수,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 신해경 옮김, 밤의책, 2022).
- “다들 기도하고 있었지만/나는 실눈을 뜨고 있었어요.” (조월의 노래, 「후문」, 『아무것도 기념하지 않는』,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