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들
끔찍하게 춥다. 이렇게 단순명료한 추위라니, 궁금할 것도 없는 날씨다. 춥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생각이다. 그러나 친구들은 얼어 터진 손으로 망원경을 쥔다. 뭐가 좀 보이느냐고 묻는다. 친구의 친구가, 할머니와 엄마와 이모들이, 언니와 동생이, 동료와 이웃들이 모두 그렇게 한다. 이곳이 전부라고 믿지는 않겠다고. 아득바득 전망을 갖겠다고. 저기를 보거라. 더 먼 데를 보거라. 지금 보이는 것보다 더 먼 곳이 있다고 믿어보거라.
바다가 보인다. 바다라면 섬 몇 개는 갖고 있다는 것쯤 우리도 알고 있으니 거기엔 섬도 있다. 가깝고 작은 섬, 멀고 커다란 섬이 모두 같은 크기로 보인다. 우리는 안다. 보일 듯 말 듯 한 섬의 존재가 그날의 날씨를 점칠 수 있게 한다는 것. 날씨 때문에 기우는 운도 있는 법이라는 것. 섬에는 부드럽게 발가락 사이를 빠져나갈 물이 있다. 물이 돌 굴리는 소리가 있다. 오늘은 정말 잘 보인다. 이렇게 보들보들한 물이 돌을 깎다니 참 이상한 일이지. 동그마한 돌 하나씩을 줍는다.
이렇게 단단한 물건을 만들 때는 재료를 녹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는 법이란다. 이게 뭐로 만든 건지 알면 깜짝 놀랄 게다. 우린 돌을 놓고 둘러앉아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지. 녹인 것을 굳혔다고 하면, 그 많은 게 결국 다 여기 녹아 있다고 하면 뭐가 들었대도 믿게 되겠지. 이런 식으로 세계를 믿었지. 희망, 희망, 희망······ 단어들을 혀로 굴리며. 희망을 녹여 만든 세계에 우리도 녹아있다고. 세계란 그런 물질이라고. 그러나 상상은 지겹다. 모든 게 다 여기에, 안 보이는 상태로 있다는 상상은 지루하고 고리타분하고 가짜이며 믿음이 없다. 사실 믿음도 지겹기는 마찬가지다. 이제는 믿음 같은 것 필요 없는, 그냥 있을 뿐인 사실을 원한다. 신비도 지겹다. 신비 없이, 모든 것이 시선 아래 낱낱이 드러난 사물과 풍경을 원한다. 파헤칠 필요 없이, 길을 잃을 수도 없이, 어디를 헤매고 다니더라도 출구가 훤히 보이는 장소를 원한다. 사방이 출구인 장소를. 우리는 언제나 한발 늦게 보지. 발생을 허겁지겁 뒤따르는 시선. 그것이 우릴 안심시킨다. 이불 밖으로 손을 내놓고 푹 잠들게 한다.
땅이 부족하다면 불을 지르거라. 불에 잡히지 않도록, 잡혀도 상관없도록 먼 델 보도록 해라. 불타며 넓어지거라. 너른 불 속을 느긋하게 걸어가거라. 멀어지거라. 불이 집어삼키는 것들을 다 잊거라. 불이 가진 전망은 지나간 자리를 모두 집어삼킬 수 있다는 잠재력 속에 있는 법. 불을 헤집고 그것을 들여다보거라.
어제 있었던 일이 모두 사라진다면, 어제도 오랜 옛날이다. 1다와다 요코, 『지구에 아로새겨진』, 정수윤 옮김, 은행나무, 2022.
오늘 그 섬 보여?
누군가 묻고
조그맣고 납작한 자연이 자신을 복원한다
- 다와다 요코, 『지구에 아로새겨진』, 정수윤 옮김, 은행나무,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