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착지
선오, 리윤 시인과 낙서 수업이라는 합동 수업을 하다가, 서로의 시를 따라 하는 시를 쓰기로 했다. 제안은 내가 해놓고 제일 고전했다. 알고 보니 리윤과 선오는 성대모사의 귀재들이었다. 그들이 쓴 성대모사 시를 보고 나는 내심 감동받았다. 사람들은 왜 성대모사를 좋아할까? 성대모사의 매력은 우리가 물리적으로 타인이 되어볼 수 없다는 한계에서 오는 것 건 아닐까? 성대모사를 통해 일시적으로 타인에 가까워질 수 있으니까. 내가 아니게 되기, 내가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감각. 어쩌면 자신을 내팽개치고 타인이 되어보는 그 마음을 좋아하는 건 아닐까? 이건 나의 편견이지만, 난 성대모사를 잘 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성격이 좋을 것이라고 짐작하곤 한다.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면, 그리고 타인을 제대로 관찰하지 않으면 성대모사는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관심과 사랑만 있다고 해서 성대모사를 잘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귓바퀴를 움찔거릴 수 있는 사람들이 따로 있는 것처럼 성대모사도 타고난 게 아닐까? 그 능력을 ‘타인이 되어보는 근육’이라고 이름해보고 싶다.
낙서 수업 4주 차. 일주일간 선오와 리윤의 시집을 끼고 살았다. 그런데 나는 성대모사에 영 재능이 없었다. 4주 차에 읽기로 한 텍스트는 이수명 시인의 『내가 없는 쓰기』였다. 그래서 이 책이 성대모사 시를 쓰는 데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사실 난 리윤의 시를 더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금세 포기하고 말았다. 리윤은 일전에 ‘씻은 손’이라는 주제로 매일 비슷한 일기를 쓴 적이 있다고 했다. 창가를 배경으로 자신의 씻은 손을 촬영을 한 뒤, 그것에 관한 짧은 기록을 매일 남겼다고. 나도 비슷한 훈련을 해보기로 했다. 작업실 로비에 서 있는 동백나무를 배경으로 씻은 손을 촬영하는 것이지. 그런데 하루도 지속하지 못했다. 일단 손을 씻는 것부터가 나와 맞질 않았다... (손을 너무 깨끗하게 씻으면 왠지 시가 잘 안 써지는 것 같다... 근거는 없다) 게다가 매일 같은 이미지를 보고 글을 쓰려니 할 말이 금방 동이 났다. 아마 리윤은 대상의 아주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는 재능을 타고난 것 같다. 같은 대상을 보고도 매일 다른 문장을 쓸 수 있는 시인인 거지. 그리고 무엇보다 손을 자주 씻겠지······
그렇게 고전하던 중 이수명 시인의 책을 폈다.
“스스로 핵심이 사라져서 그 무엇을 덜어내도 훼손되지 않고 여전히 넓은, 그런 시.”
선오의 시가 그렇지 않은가! 선오의 시는 치밀하고 구조적이지만, 다시 읽으면 무정형인 것 같기도 하다. 그 구조라는 것이 젠가 같은 형태라기보다는 방사형의 그물처럼 뻗어나기 때문에, 블록 한 개를 빼낸다고 해서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젠가가 아닌 시.
이수명 시인은 또 이런 이야기를 한다.
‘시를 그냥 시작할 수는 없을까, 빈손으로 들어설 수는 없는 것일까, 결국 무언가를 끌고 다녀야 하는 것일까.’
이 또한 선오의 시에 적용할 수 있는 문장 같았다. 도토리 창고가 다 차면 시를 시작하는 리윤과 나와 달리, 선오는 왠지 창호지 같은 흰 옷을 입고, 깨끗하게 씻은 붓을 들고 백지에서 문득 시를 시작할 것 같다. 왜 그런 인상을 받았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의 시에는 구체성으로부터 달아나고자 하는 도주의 욕망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무언가를 특정하려는 의도는 대상을 움켜쥐기도 하니까. 그의 시에는 모든 움켜쥠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이 깃들어 있는 것 같다. 덜 움켜쥐기. 난 이 친구가 작은 햄스터를 손 안에 움켜쥐거나 가두는 모습은 절대 상상할 수가 없다. 그럼 어떻게 그의 시를 따라 할까? 나는 ‘빼기의 시’를 쓰기로 했다.
김선오의 시 따라 하는 법
1) 영화관에 가되 CGV인지 메가박스인지 밝히지 말기
2) 구체적인 돌에 관해서 쓰지 말고 그냥 ‘돌’에 대해 말하기
3) 등장인물 이름 지우기. 정 없이 ‘너’라고 통일하되 츤데레의 매력을 겸비해야 함
4) 방에 그냥 누워 있기
5) 뭘 하려고 하지 말기
6) 제목 명사형으로 짓기
7) 인물의 말을 직접 인용하더라도 누가 한 말인지 모르게 하기
8) 따옴표 쓰지 않기
9) 지명 지우기
10) 캐릭터성 없애기. 애칭 절대 사절.
11) 현실의 공간에서 꿈의 공간으로 이동하기
12) 직유 쓰지 말기
13) 수식하지 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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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아주 많다······
그렇게 한 문장 한 문장 써내려갔다. 어떤 문장은 선오의 시에서 직접 가져오기도 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결미였다. 선오는 반전의 귀재다. 절대로 안전한 착지를 하지 않는다! 이따금 그의 결미는 서스펜스를 동반하는데, 대상과 주체의 자리를 전도하거나,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인물이 섬뜩한 말을 내뱉음으로써 이해를 차단하거나 하는 식이다. 독자를 시 바깥으로 내동댕이치고, 차가운 바닥에 내던짐으로써 단순해지기를 거부한다. 말도 다 맞춰놓고, 합의서도 작성했는데 계약 전날 계약을 무르는 (좋게 말하면) 당돌함 혹은 (나쁘게 말하면) ‘다 된 밥에 재 뿌리기’ 같은 면이 그의 결미에는 있다. 그런데 이것은 엄청난 재능이라 쉽게 따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의 시에서 결미를 베껴왔음을 자백한다······
안전한 착지를 할 생각이 없는 선오의 시. 차가운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독자는 하늘을 본다. 지붕이 있는 줄 알았던 세상에 지붕이 없다. 이 느낌을 내 문장으로는 표현하기가 어려워 이수명 시인의 문장을 빌려 마무리해본다.
“10월에는 지붕이 사라지는 기분이 든다.”
아, 이것은 선오의 시를 읽을 때면 매번 누릴 수 있는 멋진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