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 극장과 비
비가 온다. 지상의 빈 곳이 차오른다. 아스팔트 도로 표면의 상처들이 빗물로 메워지고 있다. 피부 위로 빗물이 흐를 때 내 살의 작은 빈틈 또한 차오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습은 보이지 않고 다만 비의 냉기를 느낀다.
우산 없이 걷던 곳은 공원의 작은 오솔길이었고 프리드리히샤인의 야외 극장으로 이어졌다. 추울 것을 예상하고 껴입은 옷 아래에서도 몸이 떨렸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잎이 빼곡한 상수리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며 기다려야 했다.
브라질 감독 가브리엘 마스카로(Gabriel Mascaro)의 올해 베를리날레 수상작 〈O último azul〉이라는 영화가 재상영될 예정이라고 했다. 포스터에는 백발의 여성이 거대하고 낡은 얼굴 모양 동상을 마주보고 서 있었다. 극장의 가장 뒷자리, 잔디밭에 펼쳐진 파라솔 아래에 다른 관객들과 함께 모여 앉았다. 스티로폼 방석에 앉아 동행이 사온 따뜻한 민트티와 레드와인을 마셨다. 함께 앉은 사람들의 체온이 추위를 막아주는 듯했다.
영화는 노인들을 사회 밖으로 추방하는 근미래 정부에 검거되지 않기 위해 도망치는 브라질 할머니의 모험에 관한 내용이었다. 영화 바깥의 빗소리와 영화 속 낯선 포르투갈어 음성이 뒤섞이며 들려왔다. 어느 순간에는 빗소리와 장면을 일치시키며, 영화의 의도된 사운드로 착각하며 듣기도 했다.
저 멀리 영사기로부터 뻗어나오는 기다란 삼각형의 빛 속으로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영사기 앞으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동안에는 투명한 물방울의 표면 위로 잠시 영화가 상영되었을 것이다. 비는 일시적인 스크린이 되었을 것이다. 영화는 아름다웠지만 야외 극장의 영사기 빛 속으로 끝없이 떨어지는 빗물의 형상에 눈길을 빼앗겨 몇 장면을 놓치고 말았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서서히 비가 그쳤다. 영사기에서 뻗어나온 빛 속의 빗방울들 역시 지워져 깨끗하게 빛나는 삼각형이 되어 있었다. 오솔길을 되돌아나오며 내가 영화 자체보다 관람의 경험을 좋아했었지 그랬었지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