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법
어떤 실험을 해보고 싶어. 갓 태어난 아이를 방에 가두고 바흐의 음악을 들려주는 거야. 아이가 다 자랄 때 까지 창 없는 방에서 바흐의 음악만 듣게 하는 거야. 말도 들려주지 않고, 다른 소리도, 음악도 들려주지 않는 거야. 바흐의 모든 곡을, 모든 곡의 변주된 모든 방식을 듣게 하고, 글렌 굴드 앨범부터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안경 쓴 백인 청년의 엉망진창 연주까지(심지어 그의 야마 하 전자피아노는 고장 나서 높은 파샴은 눌리지도 않아) 거르지 않고 듣게 하는 거야. 유튜브에 'Bach'라고 검색하면 3분에 한 개씩 영상이 올라와. 각 영상의 평균 길이는 총 6분 12초 정도야. 하나의 영상을 다 재생하고 나서 다음 영상을 재생하려고 보면 두 개의 바흐 연주 영상이 올라와 있는 셈이지. 그러니까 바흐를 연주하는 소리는 아이의 생애 동안은 물론이거니와 이 세계가 끝날 때까지 영원히 고갈되지 않을 거야. 잠깐, 이 세계가 끝날 때까지 영원히라고 했냐? 그럼 이 세계가 끝나면 영원도 끝난다는 거야? 아니, 그냥 이 세계의 영원이 끝난다는 거야. 한 세계가 끝나고 나면 다른 세계의 영원이 다시 시작돼. 그러면 그 세계에도 어떤 종류의 바흐가 태어나고, 바흐랑 똑같은 곡들을 작곡하는 사람의 이름이 ‘김금송이'일 수도 있는 거지. 바흐가 죽고, '유지혜' 라는 이름을 가진 모차르트도 태어나고, 이딴 실험을 상상하는 우리 같은 인간들도 태어나고, 동영상이랑 유튜브도 발명되고, ’김금송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모든 영상의 음원을 듣게 되는 아이가 진짜 생겨날 수도 있는 거야. 그 아이는 김금송이의 음악을 세계의 소리라고 인식해. 그 아이는 영원이라는 단어를 김금송이 음악의 한 구간으로 발음해. 그 아이에게 음악이란, 하루 두 번 제공되는 밥을 먹을 때 자신의 입안에서 들려오는 씹는 소리야. 그 아이에게 음악이란, 곡이 진행될 때 비어 있는 파샵의 공간이야. 하지만 그런 실험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어. 나도 알아. 그리고 그 세계의 구석에서도 엉망진창으로 칸타타를 연주하는 안경 쓴 청년이 야마하 전자피아노의 파샵 건반을 고치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그게 바로 나야. 때려치우고 일단 나왔어. 바흐의 풀네임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다. 맞나? 요한 스트라인스 바흐인가? 아니, 바흐를 바흐라고 발음하는 거 맞아? Bach, Bach. 야, 여름에도 강가는 시원하네. 이제 어디로 갈래. 오락실? 밤바다? 너희 집?
○ 이 시는 김선오가 문보영의 시를 시대모사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