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잔을 이해하다

호르커이가 온 세계에서는 나무들이 모조리 멸종했대. 뭐? 나무가 어떻게 인간보다 먼저 멸종할 수 있어? 나무는 죽을 때까지 키가 크고 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데다 죽을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알 수도 없는데. 맞아, 바로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나무를 위협으로 느끼기 시작한 거야. 호르커이의 세계에서 나무들은 일산화탄소 탐지기처럼 적대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물체였어. 그래서 적대감이 풍기는 냄새를 맡고 모조리 죽어버린 거지. 나무들이 모조리 죽어버리자 사람들은 내심 안심하면서 마음껏 슬퍼할 수 있었어. 호르커이는 친구들과 죽은 오백 살짜리 나무를 부둥켜안고 울었지. 봐봐, 여기 이 작고 귀여운 버섯처럼 나무에 달라붙은 애가 호르커이. 아무튼, 그래서 호르커이가 사는 세계의 사람들은 나무를 지어내기 시작했어. 생각해 봐, 새집 마당에 갑자기 오백 살짜리 나무를 지어낼 수 있는 거야. 친구들은 이제 아무도 길을 헤매지 않아. 나무는 너무 커서 아무 데서나 막 보일 거거든. 게다가 그 커다란 나무 있는 집 어딘가요, 하면 동네 사람 누구라도 길을 알려줄 수 있고. 누구나 자기 집에 그런 나무를 지어내고 싶어 하면 어떡하냐고? 바보냐? 어차피 지어낼 나무인데 누군들 다른 집 나무와 완벽하게 똑같은 나무를 갖고 싶어 하겠어? 모든 지어낸 나무는 이름표를 달고 태어난 것처럼 다 달랐어. 문제는 따로 있었지. 지어낸 나무를 견딜 수 없는 인간들이 있었던 거야. 그들은 밀수꾼을 매수해서 이웃 세계에서 나무를 들여오기 시작했어. 그걸 “진짜 나무”라고 불렀다가는 나무를 지어낸 사람들이 반발할 게 뻔하니까, “라슬로”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지. 그럼 라슬로와 나무를 어떻게 구분하냐고? 먹어보면 알 수 있었어. 나무를 먹으면 흙, 곰팡이, 벌레 똥, 버섯 포자, 썩은 열매 맛······ 같은 게 나는 거야. 진짜 나무 같은 맛. 지어낸 나무니까 아무래도 진짜 같은 게 필요했겠지? 그럼 라슬로는? 라슬로는 혀를 뇌로 만들어버려. 봐봐, 혀를 삼등분해서 보면 가장자리는 과거, 가운데는 현재, 뒤쪽은 미래를 느끼는 뇌야. 라슬로를 혀끝에서 목구멍으로 바로 밀어 넣는 성질 급한 사람이라면 목장갑 낀 손에 머리통이 잡혀 흙구덩이로 밀어 넣어지는 맛을 느낄 수 있지. 음식을 오래 씹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라면 영원히 오백 살인 나무 옆에서 자라는 키를 대충 얼버무려 보려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자세의 맛을 느낄 수도, 오백 년 된 나무 보다 커진 키가 수상해 보이지 않도록 네 머리털을 자르는 인간의 눈물 맛을 느낄 수도 있겠다. 아무튼 호르커이가 온 세계는 결국 다른 어떤 세계보다 고목이 많은 세계가 됐어. 고목은 오래된 나무. 고인은 죽은 사람. 그런데 너 ‘고(故)’라는 한자에는 오래되었다는 의미의 글자(古)가 들어 있기 때문에 옛날 책에서는 친구와 같은 의미로 고인이라는 단어를 썼다는 거 알아? 옛날이 얼마나 옛날이냐고? 나야 모르지. 호르커이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죄책감 때문인지 자신들이 지어낸 나무를 고목이라고 부르며 살갑게 굴고, 고목에게 자신들의 마음을 증명하려고 친구 대신 고인이라는 말을 썼어. 오래된 것이라고 부르면 충분히 오래 함께 있을 수 있다는 미신도 있었거든. 창가로 가봐. 저기 물잔에 떠 있는 나무가 호르커이가 가장 아끼는 고목이야.

나는 손을 들어 물을 마신다. 수면은 수상하게 일렁이다 역겨운 맛을 남기고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