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잡히는

손은 자신이 손인 줄 모르는 것처럼 움직인다. 과일을 수선하는 선생님의 손을 보면서 든 생각이었어요. 언제나 무언가를 버리는 일에 지쳐서 과일을 꿰매기 시작했다고 말씀하시는 선생님. 중구난방 찢어진 귤껍질. 맑은 주홍빛을 띤, 윤기 나는,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조각들과 한 쌍의 무구한 손. 손이란 부서진 물질을 올려 두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복원하는 다음 장면을 만들어 내는 정물이구나. 파편, 부스러기, 먼지를 데리고서 막무가내로. 저는 선생님께서 꿰맨 과일들처럼 원본을 연상시키는 형태, 다른 무언가를 닮은 것들만 남은 방에 있습니다. 몸처럼 생긴 것이 이불 같은 것 바깥으로 손 닮은 것을 내놓고 잠 비슷한 것에 빠져 있고요. 표면을 작고 가볍게 만들며 안쪽에서 조용히 말라 가는 물기 같은 잠. 잠 같은 물기. 무너지는 장소, 한겨울에 창문이 열린 방, 금 간 잔에 물 마시기, 차가운 진흙으로 채운 욕조, 썩는 것이 중요한 조각을 닮은 잠. 우리보다 너무 작거나 너무 거대한 잠. 구할수록 무서워지는 잠을 닮은 것에요.

잠든 사람의 불규칙적으로 경련하는 손가락.

깜빡이는 손가락이 가진 박자.

그런 박자로 영원을 다루듯이

영원과 닮은 돌을 쓰다듬고

시간이 빌린 몸 같은 물이

돌들을 굴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꿈을 닮듯이

비닐봉지가 새를 닮듯이

우리는 기억을 꾸리네.

우리에겐 유물, 기념품, 부드러운 피부가 필요하지만

남는 것은 화석들

뼛조각뿐이네.

선생님, 제가 보는 모든 것이 그것을 보기 전의 저를 집어삼키고 다시는 돌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저를 미치게 하고 미친 채로 안심하게 만들어요. 기억에는 온통 무언가를 닮은 형태밖에 없고요. 제 몸은 언제나 본다는 일과 엉망으로 뒤엉켜 있어요. 모든 것이 바스러지는 와중에도 솔직히 저는 부스러기들 위에 드러누워 온몸으로 햇볕 쬘 생각뿐입니다. 백사장이 곱기로 이름난 해수욕장의 모래들이 원래 무엇이었는지 저는 다 기억하고 있어요. 산산이 부서진 것, 아주 먼지에 가깝도록 박살 난 것이라면 무엇이든 참 부드럽겠지요. 아늑하겠지요. 그을린 피부는 보기 좋을 테고요. 어떤 물질들은 헛되고 터무니없는 약속만을 주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여요. 저는 어딘가 그것들을 가만히 둘 방을 찾고, 손에 쥘 수도 없는 먼지가 될 때까지 방해받지 않고 머물고 싶어요. 아무쪼록 선생님께서도 내내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제철 음식을 챙겨 드시고 매일 잠깐이라도 햇볕을 쬐며 걸으세요. 일광욕하기 참 좋은 계절이 다가오고 있네요. 

엿본 전망들

가져 본 적 없는 전망들

우리가 우길 수 있는 유일한 것.

무너진 장소들

경험을 박탈당한 장소들이 우리를 기억한다.

나에겐 힘을 빼고 누우면 자꾸 오목한 모양으로 구부러지는 손이 있다. 박살 이후의 파편, 부스러기, 먼지들 내려앉기 좋도록 구부러진 손. 그런 것들이 잡힐 수밖에 없는 모양의 손.

손안의 것들은 자신들이 처한 장소만으로도 다 가진 것처럼 보인다.

뭉쳐지고 꿰매지고 이어 붙여진 덩어리가 될 미래를.

한심하고 아름다운, 지독하게 인간적인 방식으로 수선된

죽은 얼굴들을 닮은

우습고 왜소한 무리인 우리의

접힌 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