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손으로

사방이 뚫린, 넓게 펼쳐진 공간. 모든 곳이 출구이고, 문이 없고, 벽이 없고, 기둥이 없고, 구획이 없고, 안팎이 없어 어쩐지 공간이라고 부르기를 저어하게 되는 널따란 지면에 서 있는 사람을 상상해보면 그이의 뒷모습은 아무래도 무언가를 전망하는 사람 같진 않다. “넓고 먼 곳을 멀리 바라봄”이라는 ‘전망’의 사전적 의미를 거의 정확하게 수행하고 있음에도. 그이의 시선이 가없는 먼 곳까지 던져지고 있음에도. 그이의 발바닥이 접한 지면은 발의 주변을 둘러싼 풀 한올 보다도 낮은 지대에 있으며 그이에겐 벽이 없고 벽이 없으므로 너머를 보려는 욕구도 없다. 벽이 부재한다는 것은 창문을 필요로 할 욕망의 주체도 부재한다는 뜻이다. 몸을 살짝 돌리는 것만으로도 시력이 허락하는 범위까지 멀리 바라볼 수 있음에도 전망을 갖지 못한 그이는 전망을 갖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너뜨리거나 창문을 낼 벽이 애초에 없을 때, 훤히 뻗어나가는 시선이 막연함이 되어 돌아오거나 돌아오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떤 전망을 가질 수 있을까. 어떤 방식으로 전망을 획득하려 할까.

사방이 출구인 장소란 결국 같은 미로를 복제해 방향만 돌려 포갠 것처럼 아무리 멀리 가도 끝없이 맴돌게 되는 시선일지도 모른다. 벽을 무너뜨리기는 쉽다. 제약과 방해는 전망이 필요로 하는 조건이다. 창문 너머로, 유리 너머로, 높이를 발아래 두고, 잠깐 엿보듯이, 멀리 보는 먼 곳만이 전망이 될 수 있다. 유리에 달라붙은 먼지나 물 자국과 함께. 등 뒤로 펼쳐진 풍경의 방해를 받으며. 보이는 것을 향해 달려 나갈 수 없는 지면 위에서. 걸음과 함께 주어질 허공을 두고. 전망은 ‘펼 전(展)’과 ‘바랄 망(望)’으로 이루어진 단어다. 펼쳐진 것을 바람. 바람을 펼침. 바라는 것이 펼쳐짐. 이미 먼 곳을 멀리 바라보는 일은 이런 것일까. 그 바라봄의 시선과 동작이 무엇을 바라는 인간의 마음과 붙어있다는 것이 이상하고 좋다.

전망을 내기 위해서는 벽이 필요하고 벽을 뚫거나 부수는 동작이 필요하고 깨끗한 유리가 필요하고 눈이 필요하고 때로는 눈을 보좌할 렌즈가 필요하고 날씨의 도움이, 주변 환경보다 높은 지반이 필요하다. 전망을 버리기 위해서는 두 손이면 충분하다. 손을 들어 올려 얼굴로 가져가세요. 손이라는 이상한 정물에 가로막힌 시선. 손이라는 조그맣고 연약한 물질이 넓고 먼 풍경을 삭제한다.

손이라는 이상한 정물. 강한 빛과 포개어두면 반투명한 물질로 보일 만큼 얇은 피부와 살점으로 감싸인 가느다란 뼛조각들. 그 연약함이 어처구니가 없고 조바심이 날 정도로 위태로운 정물. 무엇이든 복원하려는 본능을 내재한 것처럼 움직이는 정물. 부서진 물질을 올려두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복원하는 다음 장면을 만들어내는 정물. 손이 내포한 연약함이 손안의 것들을 세상 모든 것들로부터 안전하게 감싼다.

손바닥을 펼쳐 다 보이는 곳에 두는 것도 사랑을 보여주는 한 방법이고

도저히 펼칠 수 없는 손안에 든 것을 대신 봐주는 것도 사랑을 보여주는 한 방법이라면

무엇을 얼마나 볼 수 있건 없건 우리는 만날 수 있고 서로의 얼굴을 향해 시선을 던질 수 있고 던진 시선이 얼굴을 넓히고 얼굴 깊숙이에 먼 곳을 만든다. 먼 곳을 멀리 보면서 서로의 너저분하고 단단한 손끝에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안심시킨다. 이것이 믿고 말고와 관계없이 그냥 있는 사실이라는 것이. 내가 입고 있는 흰옷은 언제나 흰옷이 아니게 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든다. 그런데도 이것을 흰옷이라고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가 본다는 일과 엉망으로 뒤엉켜 너저분한 전망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그것만을 전망이라고 쓸 수 있다는 사실이.

그이는 이제 두 손을 이불 밖으로 내민 채 깨끗한 잠에 파묻혀 있다.

잠든 사람의 시선은 가늘게 떨리는 얇은 피부로 덮여 있다.

그이는 이제 두 손을 이불 밖으로 내민 채 깨끗한 잠에 파묻혀 있다.

그것은 희끗하게 핏줄을 비추며 전망을 덮고 있다.

작고 얇고 미약한 움직임, 다섯 개의 손가락이면 망치기에 충분할 부드러운 물성.

그 부드러움이 요구하는 한순간의 누락도 없는 시선.

아주 조그마한 운동성 때문에 눈꺼풀은 먼지도 쌓이지 않을 만큼의 시간 동안만 세계와 접한다.

같은 몸에 속한 두 손은 무엇이든 복원하는 다음 장면을 만들어낼 것처럼 오목하게 펼쳐져 있다.

보고 있노라면 올라가 벌렁 드러누워버리고 싶어지는 손이다.

얼굴이 부서진다면 손안에 올려두면 그만이겠지.

손에 무엇을 올려두는 일에 늘 신중해야 한다.

무엇이든 얼기설기 잇고 뭉쳐서 복원하는 것이 손의 본성이라면

손 위에 드러눕고 싶은 것은 부서진 것의 본성이다.

그이의 얼굴로 시선을 던진다.

얼굴은 넓게 멀리 펼쳐진다.

얼굴을 멀리 바라본다.

전망이 어른거린다.

이 전망에 집어삼켜진 채로 유일한 잠 같은 아늑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