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손》 ¹김리윤 개인전 《새 손》, 2023.8.25 ― 2023.9.16, 전시공간 리:플랫 을 위한 인터뷰

이번 전시는 거칠게 요약하자면 일종의 행위자로서의 손, 그리고 이 손이 언어라는 재료를 다루는 동안 출현하는 이미지를 다시 손을 통해 물리적인 몸을 가진 이미지로 만드는 과정에 주목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언어를 재료 삼은 시의 이미지들. 상상력에 의존하는, 읽는 이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작용을 통해서만 물질을 획득하던 이 이미지들에게 부피와 질량이 있는 물질을 재료로 주는 일은 무엇을 가능하게 만들고 무엇을 불가능하게 만들까. 이미지를 선명한 물질로 눈에 쥐어주는 일은 이미지를 해방하는 일에 가까울까, 가두는 일에 가까울까. 갇힌 이미지들을 다시 언어로 옮기는 일은 이미지에게 새로운 자유를 줄 수 있을까. 언어(비물질)―이미지와 시각(물질)―이미지는 서로에게 한 쌍의 기호가 아닌 입구로 작용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과 함께 시 내부에서 비물질성의 이미지로 또는 상징이나 언어적 기호로 존재하는 손에 물질을 덧입히기 위해 손을 동원하고자 했습니다. 각각의 과정에서 손은 스스로 오브제가 되기도 했고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종이를 접는 등의 노동을 수행하는 도구가 되기도 했습니다.

손이라는 물질, 신체, 물성, 정물, 상징, 낱말··· 무엇이라고 해야할지 결정하기 어렵지만, 어쩌면 이런 분류의 어려움을 연유로 ‘손’이라는 것에 늘 이끌려 왔습니다. 물질로서의 손, 행위자로서의 손, 이미지로서의 손, 상징으로서의 손, 언어적 기호로서의 손, 노동의 주체로서의 손. 몸에서 가장 가느다란 뼈로 구성되어 있으며 얇은 피부로 뒤덮인, 뼈와 핏줄이 움직이는 방식을 반투명하게 드러내는 이 부분은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며 우리가 행할 수 있는 가장 섬세하고 복잡한 일들을 수행하는 데 주로 쓰입니다. 때로는 기민하게 인간의 감정을 드러내는 상징이자 기관으로 여겨지며, ‘손을 잡다’, ‘손을 놓다’, ‘손을 씻다’, ‘손을 더럽히다’와 같은 표현에서 쓰이듯이 언어 체계 안에서 특수한 기호로 작동하기도 하지요. 지난 겨울 첫 시집에서 다섯 가지 키워드를 추출해 산문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작업하다가, 써왔던 시에도 여러 맥락에서 손이 출연해 왔다는 것을 깨닫고 재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손을 출몰시키는 작업 역시 손이 수행하는 일이라는 점도요.

《새 손》은 명확하게 의미화되지 않는 대신 직관적으로 낯설고 이상한 인상을 주길 바라며 떠올린 제목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새롭다’는 낯설 것 없는 수식이 ‘손’앞에 붙었을 때, 어떤 의미를 추측하더라도 거기서 계속 달아나버리는 것 같은 감각이 좋았어요. 명확한 상이 아니라 어른거리는 인상으로만 존재하는 제목이라서요. 두 단어의 조합, 두 음절의 가벼움 역시 게속 손안에서 빠져나가는 듯한 인상을 주어 좋았구요. 구체적인 의미를 상정해 놓았다기 보다, 이런 잡히지 않음과 달아남의 감각이 ‘새’것으로서의 손을 상상하고 보게 만들기를 바랐습니다.

말씀하신 제목은 모두 해당 작품의 출발점이 된 시의 부분입니다. 전시에 포함된 작품들은 『투명도 혼합 공간』(문학과지성사, 2022)에 수록된 세 편의 시 「사실은 느낌이다」, 「관광: 씻은 손」, 「관광: 씻긴 손」 그리고 아직 시집으로 묶이지 않은 「손에 잡히는」을 시작점으로 두고 작업한 것이에요. 작품 제목은 시로 돌아와 시 안에서 이 문장들을 다시 읽었을 때 해당 작품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는 일종의 렌즈 혹은 예상치 못한 곳으로 나아갈 입구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은 문장을 골라 붙였습니다. 이 제목들이 시의 맥락 안에서, 그리고 시의 바깥에서 형태와 크기를 바꾸며 존재하는 부드러운 입구처럼 기능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아직 더 망칠 수 있는 날씨가 있는 것 같다〉에는 「사실은 느낌이다」라는 시에 등장하는 ‘종이 꽃’ 이 핵심 소재인데요. 작업에서 언급되는 ‘종이 꽃’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요?

우선 작업에 등장하는 특정 단어 혹은 사물이 의미와 일대일의 대응 관계를 이루도록 설정하는 것을 지양하고 싶고, 이런 의미화로부터 탈각되는 지점이 있기를 대체로 바란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저는 연약성이 일종의 끔찍함을 동반한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극도로 연약한 물성을 보고 있거나 다루고 있노라면 그 연약함 때문에 초조하고 두렵고 불안해집니다. 반면 이렇게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성질 때문에 연약함은 다치기 어려운 사물의 조건으로 자리할 수도 있습니다. 상상 속에서 종이 꽃을 바라보며 이런 연약성을 떠올렸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종이 꽃’이라는 텍스트가 있을 때 그것을 물리적인 실체로 옮겨 보여주는 것, 그러니까 텍스트에 붙는 일종의 삽화처럼 이미지를 다루는 일을 피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손이 어떤 일을 수행하고, 수행의 결과만을 남겨두는 대신 과정에서 손이 행하는 동작과 손이 남기는 흔적을 다루고 싶었어요. 손과 마찬가지로 종이 역시 극도로 연약한 물질입니다. 각자의 취약성이 반응하는 물질은 다르겠지만요. 손은 종이를 손가락 하나로도 망쳐버릴 수 있지만, 종이 역시 어렵지 않게 손에 상처를 입힐 수 있어요. 종이 꽃을 접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더듬거림이 필요한 까다로운 작업입니다. 이 과정에서 종이는 손이 행한 모든 동작의 흔적을 새긴 복구 불가능한 상태가 되고요. 손의 확신이 서린 명료한 직선, 선들이 모이는 자리의 찢어질 듯한 꼭지점, 손이 더듬거리는 동안 남겨진 자그마한 구김들. 이런 것들을 통해 시간과 망설임과 실패와 더듬거림, 그리고 손과 종이 각자의 연약성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종이는 대부분의 물질에 취약하고, 물과 불처럼 서로 상반된 성질의 것에도 동시에 취약하지요. 그러나 불이 가진 압도적인 파괴성은 거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태울 수 있는 반면 한 컵의 물이 형태를 완전히 망가뜨릴 수 있는 표면은 흔하지 않습니다. 종이는 바로 이런 표면이고요. 수채화 작업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은, 얇고 습기에 취약한 종이를 칠하는 행위는 종이를 망가뜨리는 동시에 빈 종이에 무언가 그려진 것이라는 맥락을 더합니다. 망가진 종이인 동시에 더이상 종이가 아닌, 그림 비슷한 사물이 되는 것이지요. 물기 때문에 우글우글하게 손상된 종이의 표면은 물질 자체가 지닌 연약성을 직관적으로 드러내고 있지만 작품으로서 이 종이들은 망가진 상태가 아니라는 점에서 발생하는 간격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종이는 푸른 빛이 도는, 광물이 섞인 물감으로 칠했는데 광물의 성질 때문에 빛과 관람자의 움직임에 반응하여 다르게 보입니다. 우선 이 가변적인 광택과 빛깔이 바닥에 설치했을 때 직관적으로 물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의도하기도 했고요. 영원성을 담보하는 것 같은 광물의 단단함이 얇고 연약한 종이 위에 흩뿌려진 채 빛나고, 시선의 돌봄을 받으며 놓여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좋았습니다.

한국어 문장으로 ‘손을 씻다’는 우리가 하루에도 몇 번씩 수행하는 일상적이고 단순한 동작을 설명하는 사실인 동시에 관용적인 표현이기도 합니다. ‘손을 씻었다’는 문장은 앞뒤 맥락에 따라 실제로 행해진 동작일 수도, 어떤 일을 그만두거나 끝냈다는 표현일 수도 있지요. 때문에 실제로 씻은 손을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같은 문장에 담긴 두 의미 사이의 간격을 드러내는 일이 됩니다. 시에서 언어를 재료로 한 ‘씻은 손’의 이미지를 보는 것과 전시장에서 사진에 담긴 ‘씻은 손’을 보는 일 사이에도 필연적인 간격이 발생하고요. ‘씻은 손’이라는 텍스트는 한 장의 이미지로 단순한 재현이 불가능합니다. 관용적 표현으로서의 ‘손을 씻다’는 앞뒤로 일종의 서사가 놓여 있어야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특정한 손의 외양, 혹은 손이 행하는 특정한 동작에 끌린다기 보다는 손이 너무나 광범위한 동작을 행할 수 있고, 가늠할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릴 수 있으며, 그 자체로 도구가 되는 동시에 쥐여질 것을 염두한 수많은 도구가 발명되도록 한 신체라는 것 자체에 이끌렸다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손을 잡고 있는 손, 얼굴을 받치고 있는 손,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것을 쥐고 있는 손, 총을 잡고 있는 손, 칼자루를 쥔 손, 칼날 앞에 놓인 손이 모두 다른 연약성을 지닌 모두 다른 물성이 된다는 사실에요. 가령 다른 손을 맞잡고 있는 손의 이미지는 그것이 같은 사람의 두 손이건, 서로 다른 사람의 손이건 일종의 애틋함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반면 칼자루를 쥔 손의 이미지는 폭력성과 불안을 내재하고 있지요. 저는 두 이미지에서의 손이 모두 연약하지만 전자의 연약함이 부드럽고 연한 것에 가깝다면 후자의 연약함은 깨지기 쉽고 날카로운 것에 가깝다고 느낍니다. 같은 살과 뼈와 피부로 구성된 물질임에도 손은 그것이 손에 쥔 도구나 예지하는 움직임에 따라 다른 물성을 획득하는 것 같습니다.

우선 사진을 그리는 과정, 손이 ‘그린다’는 동작을 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들이 중요했습니다. 데이터로 존재하는 사진 이미지에 비해 완벽한 평면이 아닌 그림으로, 명과 암 하나하나가 손이 행하는 동작을 통해 재현하는 과정에서의 감각과 시간성이요. 또한 이 과정을 통해, 그림이라는 결과물의 존재로 인해 수집한 사진들을 단순한 아카이브 바깥으로 데려나올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유화는 엄밀히 말해 완전한 평면이 아닙니다. 벽면에서 돌출된 캔버스라는 프레임이 있고, 캔버스 표면의 질감이 있고, 그 위로 얹힌 물감의 질감이 있으니까요. 이것을 다시 완전한 평면으로 만들고, 원본이라는 위상을 무화시켜 수집한 이미지와 뒤섞고 싶었습니다. 부분을 확대하고 자르고 축소하여 보여줌으로써 손가락 하나로 자유롭게 규격을 변경하고 원하는 부분을 자세히 볼 수 있는, 스크린을 통해 접하는 이미지의 친숙한 속성을 가져오고 싶었고요. 원본보다 크고, 확대된 출력본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 손이 행한 것들이 미세한 부분까지 낱낱이 드러나게 되지요. 그림을 그리는 손은 눈과 밀접하게 연루되어 있고 보이는 것에 기대어 다음 순간의 움직임을 결정하게 되는데, 그리는 동안 제 눈이 감각했던 것과 다른 배율로 그림을 보여줌으로써 눈과 손의 관계를 살짝 비틀어보고 싶기도 했어요.

손이 반복적인 동작을 수행하는 과정과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차이, 습관, 동일성 등을 들여다보고 싶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연작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시 쓰기와 그래픽디자인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았는데, 사실 저에게 그래픽디자인은 의뢰를 받고 수행하는 일이라는 것이 가장 주요한 정체성이기 때문에 시 쓰기와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일입니다. 다만 이번 전시처럼 일에서 벗어나 이미지를 다루는 작업을 할 때는 텍스트에서 사진이나 그림 등으로 재료가 달라질 뿐 비슷한 일이라고 느껴지기도 해요. 언어를 재료 삼는 시 속의 이미지들은 물질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존재하기에 자유롭고 가변적입니다. 존재를 위해 상상력을 동원하는 이 이미지들은 매 순간 자기 자신을 전복하고 자발적으로 손상됨으로써  아무리 손상되어도 망가지지 않는 물질성 혹은 비물질성을 획득하지요. 물질을 재료로 삼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시에서의 이미지가 가진 불완전함과 그것이 품고 있는 가능성은 어디로 나아가고 또 휘발되는지를 자주 생각합니다. 시각 이미지를 다룰 때는 상상력에 의존하는 이 이미지들, 읽는 이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작용을 통해서만 물질을 획득하던 이 이미지들에게 부피와 질량이 있는 물질을 재료로 주는 일은 무엇을 가능하게 만들고 무엇을 불가능하게 만드는지를 고민하게 되고요.

제 손에 대해 특별히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질문을 받고 생각해 보았는데, 역시 손에 대해 앞서 말씀드렸던 다양한 맥락 속의 하나로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네요.

학부 졸업 전시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시각 이미지를 다루는 작업을 했습니다. 물리적인 실체가 있는 이미지를 만드는 일, 물질로 존재하는 재료를 다루는 일에 수반되는 제약과 노동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과정이었어요. 언어라는 재료를 다루는 일에 사용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손을 사용하는 과정이기도 했기 때문에 전시를 준비하는 시간 동안 일종의 ‘새 손’으로 살아온 것 같습니다. 물질로 존재하지 않는 언어와 문자를 재료로 삼는 것과 다양한 특성의 물질과 도구를 재료로 삼는 작업이 각각 달리 갖는 자유로운 영토와 제약이 새롭게 어렵고, 새롭게 좋았습니다.

어떤 어려움이나 오해를 해결해야 할 문제로 생각하지 않을 때 도착하는 자유로움이 있고 저는 그것이 참 좋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시도, 전시도 이런 자유로움 속에서 즐겁게 읽고 보아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