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하게 씻은 추상」을 위한 메모 또는 씻은 손 일지
물방울은 무엇을 향해 기우는지. 자신을 끌어당기는 힘을 향해 기우는 것도 일종의 방향을 갖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창가에 둔 젖은 손은 사물처럼 보인다. 잘 씻기고 닦이고 말려 해가 잘 드는 창가에 올려두면 아무렇게나 자라는 것. 제멋대로 자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엇을 따름으로써만 방향성을 가질 수 있는 것.
창문은 빛을 위한 구멍인가, 풍경을 위한 액자인가, 벽의 존재를 증언하는 사물인가. 오늘 같은 날씨가 창밖에 있다면 누구라도 창문에 시선을 빼앗길 것이다. 이런 날씨를 벽 너머에 두고 있다면 누구라도 창문을 필요로 할 것이다. 창가에서 렌즈를 통해 씻은 손을 바라보는 일은 손끝에 매달린 채 주변을 흡수하며 덩어리를 이루는, 소멸하는, 중력을 거절하지 않는,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에 복종하는, 빛과 풍경을 모아두는 사물로서의 물방울을 눈을 바싹 들이댄 채로 바라보는 일이다. 시간을 잘게 잘게 부수어 눈을 위해 사용하듯이. 영원 같은 변화 속에서.
얇은 막 너머에 미량의 빛이 있는 듯한 날씨. 창문에 닿을 듯한 기세로 녹색을 뻗고 있는 은행잎들 사이를 통과하기에는 너무 미미한 빛. 씻은 손은 렌즈를 사이에 두고 몸과 분리하듯이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다. 손의 윤곽을 따라, 흐르는 물기를 따라,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들을 따라 가변적인 테두리를 그려내는 미미한 빛이 여전히 있다. 뷰파인더 역시 일종의 창문으로 기능한다. 그리고 이중의 창 너머 손의 배경이 되는 바깥의 풍경. 이 풍경은 창문 없이 존재하는 것과 같지만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은 것으로 바깥을 보여준다. 이 미세한 가변성에 어떤 영속이 붙어있다는 생각. 이 변화가 어떤 영구함을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
해가 완전히 졌지만 창밖에는 어둠이 없다. 작은 불빛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어둠을 삭제한다. 창문은 종일 내린 비 때문에 푹 젖어있지만 물에 담겼다 나온 것답게 지치고 축축하고 추위에 떠는 행색은 아니다. 명료한 형태의 빗방울들. 그러나 굴러떨어지고 뭉치고 새로 맺힌 물방울들과 합쳐지며 매 순간 형태를 바꾸는, 가변적인 명료함. 창문은 여전히 단단하고 생기 있고 바깥의 비를 분리하는 사물로서, 두터운 막으로, 투명하게 거기 있다. 잠깐 물에 닿았을 뿐인 손의 피로하고 젖은 행색과 많은 비. 많은 물. 많은 어둠. 많은 불빛 사이를 투명하게 가로지르며.
이틀째 쉴 새 없이 비가 내린다. 가까운 나무가 만드는 녹색 창 앞의 손. 피부 아래로 비치는 혈관들이 창문과 닮아 보이는 날씨. 피부 위로 맺힌 물방울들이 표면의 일부였다가 표면에서 분리되는 장면과 젖은 피부로 스며드는 차갑고 축축한 촉감에서 이 피부가 나라는 살덩이의 표피임을 느낀다. 손가락은 물방울에게 방향을 줄 수 있을 만큼 섬세하게 움직일 수 있다. 은행잎에 얹힌 물방울들은 유리처럼 표지 부동의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비가 그친 후의 놀랍도록 깨끗하고 맑은 날씨 덕분에 뿌연 창문 너머의 풍경이, 창문에 낀 먼지의 겹을 통과하는 빛이 낯선 질감으로 번진다. 씻은 손을 따라 흐르는 습기 역시 더 분명하고 깨끗하게 윤곽을 획득하며 빛난다. 빛을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는 맨살들처럼. 빛에 살갗을 주기 위해 빚어진 피부처럼. 손에 피부를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빛이 창의 내부로 틈입한다.
손이 씻긴 몸에 손으로 옷을 입히고 손으로 문을 닫고 손으로 가방을 들고 손으로 문을 닫고 손으로 문을 열어 손으로 손을 씻는다. 손을 씻기는 손의 움직임은 너무나 정교하고 손가락 뼈가 움직이는 방식은 너무 섬세하다. 그렇게 움직이는 뼈마디 하나하나는 얇고 부드러운 살갗 아래로 얼마나 가느다란 윤곽을 드러내는지. 생각하면 얼마간의 애틋함, 또 얼마간의 징그럽다는 느낌이 동반된다. 이렇게 오랫동안 씻은 손, 젖은 손을 보고 있으면 그것이 손끝에 매달린 물기 만큼이나 미약한 것으로 느껴져 이상하다.
손은 축축하다.
씻은 손은 축축하고 부드럽다.
축축한 손은 부드럽다.
축축한 손은 일반적으로 차갑다.
축축한 손은 물기 어린 손이다.
축축한 손의 물기는 살과 다른 물질이다.
물기의 표면은 투명하고 광택이 있다.
광택이 있는 표면은 외부를 반영한다.
물방울은 일종의 구다.
구는 외부의 풍경을 요약한다.
투명한 구는 풍경을 뒤집어서 가둔다.
갇힌 풍경은 일시적이다.
재가 섞인 물처럼 번지듯 밀려오는 밤의 푸른빛. 이 푸른빛 앞에서는 손이 유난히 붉고 피와 살로 이루어진 물질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물기가 말라가는 시간. 물방울이 구르고 손끝에 매달리고 그것이 멈춘 것처럼 보이는 이상한 시간. 어스름한 바깥에 남아 있는 일말의 환함이 손끝의 물방울에 갇히는 시간.
창문에서 중요한 것은 밖을 내다볼 수 있다는 전망인가.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관망인가. 아니면 내부의 어둠을 무너뜨리는 빛의 침입인가. 외부의 어둠을 반사하는 거울성인가. 내부를 보호하고 있다는, 보호받는 내부가 되었다는 감각인가. 외부와 단절되어 있다는 감각인가. 시각을 통해 외부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인가. 창문이 창문이게 되는 순간은 벽에 뚫린 공간이 생기는, 벽이 손상되는 순간인가. 아니면 그 손상이 유리로 수선되는 순간인가. 소음들은 한순간도 같지 않으면서 매일 비슷하고 창밖은 언제나 씻은 손의 씻김을 침범한다.
소리와 유리에 맺힌 물방울의 이미지로만 자신의 존재를 증언하는 비. 이렇게 젖은 외피 안에 담긴 공간이, 습기를 주렁주렁 매단 투명한 껍질 내부가 이렇게나 물과 무관할 수 있다는 일이 주는 안도와 부드러운 충격. 손의 윤곽을 그리며 흘러내리고 뭉치고 몸집을 키웠다가 이내 사라지는 물방울들은 외부와 연결된 것 같다. 바깥의 물기를 증언하는 것 같다.
창문에 포개진 창문 앞의 손, 손에 깃든 피로를 본다. 무디고 더딘 손. 가위에 눌린 사람이 한마디 한마디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손가락을 생각한다. 이런 혼란 이런 피로 속에서도 움직이는 손. 내 몸의 움직임이 아닌 것이 내 몸에 움직임을 돌려주는 것 같은 이상한 감각. 손은 자신이 귀신이라는 것을 수치스러워하는 귀신처럼, 인간의 몸을 빌린 채로 얼마간의 죄책감을 느끼는 귀신처럼 자신이 입은 외피를 어색해하며 움직인다. 작게, 가늘게, 섬세하게, 조심스럽게. 순간을 버리며. 순간을 향하며.
창문 안쪽에서 보는 날씨에는 더위가 없다. 실내의 시원하고 산뜻한 공기는 바깥의 더위에 저항하지 않는다. 창문은 안과 밖이 관계 맺는 방식을 재설정한다. 렌즈 안에서, 바깥이 어둠을 획득할수록 실내는 밝음을 획득한다. 젖은 채로 움직이는 손. 손의 물기들. 손을 움직일수록 물방울들은 고정되는 현재로부터 빠르게, 적극적으로 달아난다. 물방울 내부의 바깥이, 빛의 얼굴이 순간을 더 짧은 순간으로 쪼개며 변하는 시간이다. 곧 완전히 해가 질 것이다. 바깥의 어둠 덕분에 그림자처럼 보이는 손은 다시 피부를 되찾을 것이다.
카메라의 접사 모드는 아주 밀접한 근경으로 선택된 사물을 제외한 모든 것을 추상으로 만든다. 손을 제외한 모든 것이 추상이 되는 장면. 그러나 너무 가까운 사물 역시 형태 대신 표면만 남은 추상에 가까워지므로 결국 남겨진 장면에는 서로 다른 추상인 원경과 근경이 존재한다. 윤곽이 허물어지고 사물에 가닿는 빛의 파동만 남겨진 추상. 윤곽과 표면의 선명도를 올릴 때 소실되는 질료. 일종의 그림자로, 추상적인 덩어리로 남겨진 손의 내부에서 정밀하게 움직이는 뼈들이 있다. 그리고 움직임을 따르는 물방울들이.
물기어린 이미지는 물소리와 쉽게 엉킨다. 서로에게 엉겨붙고 뭉친다. 빗소리. 파도 소리. 수전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소리. 해수욕장의 소음들. 어떻게 어긋나있는 소리를 던져두어도, 물의 소리와 물의 이미지는 간격과 어긋남을 포함한 채로 서로를 껴안는다. 금 간 채로 하나인 것의 아름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