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하게 씻은 추상
추상은 꿈꿀 공간을 준다지만 1데이비드 린치의 인터뷰에서 발췌.
너는 구체적인 창문을 필요로 했다
꿈꿀 공간 말고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설명할 필요 없이
보여주면 그만인 그런 것
그런 창문을
원했다
시간을 잘게 부수어 눈을 위해 사용하기를
너는 추상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꿈꿀 공간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꿈을 꾸느라 피로에 전 채 탁한 눈으로 나를 보는 사람이 되지는 않기 위해 혼곤한 잠에 취할 수 있을 정도의 꿈꿀 공간만을 남겨놓기 위해 창문을 필요로 했고 추상이 필요한 순간이면 창밖을 흐릿한 배경으로 만들 사물을, 창문 앞에 두고 아주 오랫동안 잘 바라보기 위해 애쓸 만한 개체를 필요로 했다 가까운 곳에서 눈을 떼지 않고 볼 만한 움직임을 가진 것 계속 헝클어지는 가장자리를 가진 것 시선을 잡아채는 방식으로 운동하는 테두리 가장자리 바깥의 모든 것을 추상으로 바꿔버릴 수 있는 덩어리를
그러니까 손 같은 것 조그맣고 가늘고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 젖을 수 있고 다시 마를 수 있고 젖었다 마르는 동안 손상되지 않는 것 보고 있으면 무슨 의지 같은 것이 있으리라 짐작하게 되는 것 변화하는 표면을 가진 것 깨끗하게 복원되는 표면을 가진 것 다른 물질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것 보지 못한 세부가 남겨져 있을 거라는 느낌을 거듭 주는 것 네가 아는 무엇보다 구체적인 것 거의 모든 것에 대한 구체성처럼 움직이는 것 물의 부드러운 투명함을 깨지는 물질의 속성으로 다시 빚는, 그러니까 손 같은 것
씻은 손의 물기들은 순간을 더 작은 순간으로 쪼개며 구체성에서 달아난다
시간을 잘게 부수며 몸에 서린 광택이 된다
누구라도 창문을 필요로 하게 되는 날씨가 창밖에 있다
창문은 손상을 통해 벽을 증언한다
주변을 흡수하는 빛
풍경을 모아두는 초소형 사물로서의 물방울이
너의 손끝에 있다
꿈꿀 공간이 우리를 짓누른다면 잠들 수 없을 거야
흐르고 떨어지는 동안만 가능해지는 추상
순간을 전제로만 가능한 선명함
눈앞의 손을 보는 동안
흐릿한 배경에 불과해지는 바깥
얼버무려진 것의 아름다움
딱 그만큼의 추상이 우리를 잠들게 한다
우리를 껴안게 한다
서로에게 아무렇게나 기대어 시간을 바라보게 한다
구멍을 수선하는 일이 유리만이 가질 수 있는 재능이라면
창문은 수선된 손상이고 바깥과 결탁한 구멍이다
물방울은 외부의 풍경을 요약한다
손가락은 물이 방향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부드러운 테두리를 넘어 다니며
부드러운 움직임을 배우며
일시적인 요약을 깨뜨리는 손
안팎이 맺은 관계란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
얼마나 밀접한 거리인지
우리는 다 보이는 채로만 아늑함을 느낄 수 있었지
유리로 만든 동굴 안에 앉아
겁에 질리지 않고 표면에 기댄 채
오랫동안 다른 표면을 볼 수 있었지
기억은 표면을 사랑하기 때문에
얼굴은 추상이 되지 못한다
너는 새 손과 함께 있고
물기의 차가움을 분명하게 느낀다
씻은 손의 물기가 창밖에 관여한다
창밖은 흘러간다
- 데이비드 린치의 인터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