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과 기억
여러 개의
여러 개의 방이 있어 이곳이 터널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문 하나가 일요일 쪽으로
열렸다. 일요일은 나를 종로에 가두고 있었다.
사직공원에도 봄이 오고 있었다. 우리가
우리의 나무라고 부르는 나무도 있었다. 아직
꽃나무라고 부르기에는 어린 나무가
봄을 흔들고 있었다. 우리는 왼발부터
아니 오른발부터
아니 왼발 오른발은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니까 그냥
걷고 있었다고 해야겠다. 사직공원을
지나면 사직터널이 나온다.
우리는 우리의 나무에 붙들려 있었다. 동시에
터널에 이끌리는 중이었다.
사직터널을 지나면
오후가 열릴 것이고, 그곳에는
우리가 우리의 나무라고 부르지 않는 나무가
잎,
잎을 두 개
길을 세 개
우리의 발등 위로 떨어뜨릴 것이다.
아 차가워,
입을 벌릴 때
우리는 어느 깊고 맑은 수영장에서
헤엄을 친다.
수면에는 구름이 비치며
그것을 우리의 나무라고 부를 것이다.
찢어진 물은 금방 다시 붙는다. 내가
너와 벗은 등을 맞대듯이.
여러 번
발장구를 치고 나서야 이곳이 꿈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내가 젖은 꿈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나무가 앙상하다.
그것이 우리인지 모르겠다.
아니 나무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