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 선물 교환 파티 ¹이 시는 김선오의 오랜 친구 김비키의 2023년 생일 및 집들이 선물로 쓰였다.

비키는 자신의 집이 좁다고 느낀다

비키에게는 역사가 있고

역사가 비키의 집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비키의 역사 속에는

비키의 친구들이 살고 있다

친구들의 얼굴이

친구들의 움직임이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모두 비키 집에 깃든 유령이라서

이사도 같이 다닌다

비키는 연남동에 산다

연남동에서 비키는 여러 번 이사를 했다

빠레트 옆에서

빠레트 앞으로

빠레트 서쪽에서

빠레트 동쪽으로

연남동의 북극에서

연남동의 남극으로

이번이 몇 번째 이사인지 아는 친구는 없다

그러나 비키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친구는 많다

그래서 비키의 집에는

너무 많은 물건들이 있는데, 이를테면

하루키 전집

러쉬 입욕제

톰웨이츠 엘피판

쾅프로그램 테이프

환락의 집에서 찍은 단체사진

김선오 첫 시집

김선오 두 번째 시집

잠들기엔 조금 딱딱한 소파

일 층에서 주워 온 플라스틱 욕조

모카포트

프랑스에서 온 액자

얼굴이 있는 완두콩 인형?

(아, 이건 비키가 8년 전 핼러윈에 홍대 길거리에서 내게 사주었던 것이다)

비키는 말한다

이번 집들이에서는

무형의 선물만을 받겠습니다

저는 너무 많은 물건들에 지쳤어요

뭐라고?

무형의 선물?

친구들은 고민을 시작한다

비키가 좋아하는 무형의 것을

주어야 할 텐데,

뭐가 있을까……

이를테면

비키의 과거와 미래를 위한 기도

다 같이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커다란 빵

농담

근황

실손 보험

멋진 옷차림

브레이크 댄스

온라인 항공권

다음 달 월세

방 청소

부드러운 목소리

피아노 연주

행운의 주문

나는 그 모든 것 대신

시를 한 편 써 가기로 했고

그 시가 바로 이 시다

시는 종이를 채우고 있는데

이것을 무형이라고 불러도 되나?

조금 고민했지만

그냥 가져가기로 결심한다

종이 한 장쯤은

무형이라고 칠 수도 있겠지

종이가 너무 크거나 무겁다면

시를 컴퓨터에 옮겨 적을 수도

용량이 없다면

그냥 외워버릴 수도 있겠지

그러면 종이가 없어도

비키는 이 시를 어디에서든

낭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종이는 필요 없어지겠지

이 종이는 그러므로

무형으로 가기 위한 잠깐의 유형,

임시적인 유형인 것이다

비키는 이제 빠레트가 아니라

미드나잇플레저에서 일한다

비키의 본명은 조대현이다

우리는 비키를

대현아!

이렇게 부르기도 하고

비키야!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비키는 돌아본다

우리가 기억하는

형체가 있는

바로 그 얼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