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보는 숨
아주 약하고 어린 것과 함께였다. 허공의 깨끗함을 견딜 수 없다는 듯 부옇게 움직이는 것들이 있었다. 먼지인가, 꽃가루인가, 날벌레 떼인가 하며 자세히 보았더니 그건 아주 연약한 빗줄기였다. 비라기보다 누군가 중력을 보여주려고 치는 장난 같았지만 어쨌거나 천천히 우리의 몸을 적시는 습기였다. 안개비가 사방으로 들이치는 통에 여기가 잠의 안팎 중 어디인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갓 태어난 듯 아주 어리고 약한 것과 함께였다. 양손을 모아 엄지와 검지를 포개고, 최대한 빈틈 없이 붙여보니 오목한 모양이 되기에 그대로 뒤집어 그것의 머리를 감쌌다. 몸과 몸 바깥을 비슷한 정도로 낯설어하는, 자신과 자신 바깥을 구분하기에는 너무 희미한 피부를 가진 것. 나와 함께인 것. 나의 움직임을, 나의 체온을 자신의 것이라고 혼동할 그것을 위해 조심하면서. 바람의 등뼈를 따르는 빗방울의 자세를 배우면서. 홑이불을 덮어주듯 지면을 토닥이는 빗방울의 움직임을 배우면서. 그것의 혼동이 피부 너머로 내게 전염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면서. 움직인다. 오늘 아침 손톱을 만족스러울 정도로 바싹 깎아두었더니 걸리는 것 없이 둥글고 부드러운 손가락이 느껴진다. 퍽 안전하다고 느낄 것이다. 머리를 감싼 구조라면 대충 모자라고 부를 수 있고, 모자란 일단 보호구인 셈이니까.
손바닥을 간지럽히는 털이 무섭도록 부드럽다. 따끈따끈한 머리통이 내쉬는 숨으로 착각할 만큼. 그것은 사방으로 흩날리는 빗방울과 같은 속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털로 착각할 만큼 구체적인 움직임을 가진 숨이다. 바람과 숨이 뭉쳐지면 질감을 가질 수도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촉감이다. 물방울이라 부르기에도 멋쩍은 입자의 비가 손등과 부딪힌다. 얇은 막을 직조하듯 피부를 적신다. 우리는 바람과 등을 맞대고, 그 바람은 나뭇잎과, 또 새와 등을 맞대고, 새는 구름과, 구름은 비와, 비는 지면과 등을 맞대며 쌓이고, 쌓인 비의 수면이 새로 내리는 비와 등을 맞대고, 수면은 백조와, 백조가 튕겨낸 물방울이 다시 바람과 등을 맞대고, 그 바람이 비 입자와, 비 입자가 나의 손모자가 등을 맞대고…… 그렇게 천천히 움직이며 서로의 어깨뼈를 혼동하고 있다. 우리가 쌓인 물을 헤치며 나아갈 때, 물속에서 움직일 때, 등을 맞댄 세계가 우리의 움직임을 따르기 시작하는 것을 본다. 물은 우리의 반영으로서 떨리는 주변을 보이는 것으로 쥐여준다. 우리의 눈이 그걸 붙잡으려 한다는 듯이, 그런 눈길에 잡히지 않듯이, 서서히 간격을 벌리며 멀리멀리 멀리 퍼져나가는 동심원. 차갑게 젖은 머리카락. 머리카락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 쌓인 물의 가장자리까지 천천히 동심원을 그리며 나아가는 움직임. 동심원을 따라 회전하는 깃털의 움직임. 천천히 부드럽게 회전하는 새의 파편. 넓어지는 몸의 경계를 흐리게 문지르며 찰랑이는 둥근 움직임.
모자를 뒤집을 때 시작되는 집이 있다면 모자를 뒤집는 당신이 있다. 모자였다가 손 우물이었다가 집이 될 당신의 부분, 뒤집힌 모자가 되는 당신의 손이. 머리통의 입체를 기억하는 집이. 아주 어리고 연약한 것의 털은 집 안에서도 푹 젖어있다. 몸이 속한 곳이 공중인지 지면인지, 집인지 물속인지 구름 안쪽인지 착각하게 하는 젖은 깃털. 안팎이 뒤집힐 때 내 안쪽이 온통 세계가 되듯이, 떨며 서로를 혼동하는 숨과 물. 우리의 숨과 뒤엉킨 허공. 돌아가려는 움직임에서 발생하는 사건이 있고, 거기 집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아니 집이라는 이름이 사건을 끌어당기고. 이제 그만 돌아가자, 돌아가는 길에 뒤집히는 모자가, 모자의 반영으로서 떨리는 주변이 집을 이루는 구조가 될 때. 집에 가자, 말하는 사람의 뒤집어진 모자가 당신의 오목한 손을 닮을 때. 한평생 손끝을 만지면 걸리는 게 없을 정도로 손톱을 바싹 깎아온 이, 그의 모난 데 없이 동그란 손모자, 약간 울퉁불퉁하고 부드럽고 성글게 짜인 모자, 뒤집힌 모자, 시작될 집이 자꾸 새어 나오는, 주변을 전염시키려는지 유실되려는지 알 수 없는 집, 사각거리는 홑이불을 덮고 잠든 당신, 벌어진 입가의 옅은 침 자국, 눈꺼풀의 파란 핏줄 위로 야생 그림자의 운동, 손안에 잠든 것의 깃털을 말리려 쏟아지는 햇빛, 햇빛을 쪼개며 들이닥치는 밥 냄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