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속도
큰 나무가 있는 장소는 오래된 장소다. 커다란 고목은 살아 숨 쉬며 자라는 영원처럼, 장소보다 오래 지속하며, 자신의 둘레를 모두 오래된 것으로 흡수하듯이 서 있다. 그러나 나무는 얼마나 커야 큰 나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언제나 작은 나무라고 서술한 것보다 더 작은 나무가, 이만하면 크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큰 나무가 있다. 우린 뒤뜰을 바라보며 소파에 앉아 있었다. 여기 심긴 나무 몇 그루를 관목이라고 해야 이 풍경을 정확하게 상상할 수 있을지, 교목 혹은 소교목이라고 해야 그럴지 잘 모르겠다. 너에겐 얼굴 가운데를 힘껏 구기듯이 미간을 쥐어짜며 웃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때도 우리는 사진 속 네 얼굴, 울음이 터지기 직전의 사람처럼 웃는 그 얼굴을 보며 웃고 있었다. 구겨진 종이처럼 움푹한 자리가 많고 접힌 공간이 많고 그림자가 많고 숨을 곳이 많은 그 얼굴.
너는 너를 겁에 질리게 하는 것에만 이끌리곤 했지. 사진 속의 너는 그런 사람답게 컴컴하고 거대한 숲에서, 커다란 나무들 중에서도 가장 커다란 것을 껴안은 채로 흰옷을 입고 웃고 있다. 사실은 껴안았다기보다 나무의 일부분에 새하얀 얼룩처럼 붙어 있었던 것에 가깝지만. 사진 바깥의 네가 나무를 가리키며 수령이 오백 살쯤 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라고 설명한다. 사진 속 너는 너무 조그마해서 나무 둥치에 자라는 작고 귀여운 버섯처럼 보인다. 작고 귀엽고 위험한, 그것을 엄지와 검지로 똑 따서 입에 넣는 사람 하나 고인으로 만드는 것쯤 아무것도 아닌 버섯. 따서 손바닥에 올려두면 겁에 질린 나머지 겁을 주려는 것처럼 흉흉한 빛을 내는 버섯. 너는 우스꽝스럽지 않다면 슬플 수도 없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그럴 때마다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얼굴을 구기며 웃곤 했지. 작고 우스꽝스럽고 무섭고 슬픈 버섯처럼, 나를 겁에 질리며 겁에 이끌리게 하면서.
몇백 년은 산 커다란 나무들이 만드는 커다란 어둠으로 무성한 세쿼이아 숲. 나무 외의 식물이라곤 부드럽게 바닥을 덮은 이끼들, 나무 둥치의 이름 모를 버섯들이 전부인 숲. 몇백 년 동안 조그만 세계들이 태어나고 군집하고 스러지거나 끌려 나가는 일이 반복되어 왔다 해도 너무 어두워서 아무도 보지 못했을 만큼 어두운 숲. 한낮에는 안팎을 나누는 장치로서의 어둠이 있고 밤에는 누구라도 자신의 둘레를 잠깐 잊게 되는 어둠이 있는 숲. 모든 자리가 응달이라 사물이 그림자와 쌍을 이루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운 숲이야. 너의 설명처럼, 네가 껴안고 있는 고목 주위는 검은 장막을 친 것처럼 온통 어둠이었고 네겐 그림자가 없었다. 아무 곳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는 새카만 무를 닮은, 숲을 만드려다 아주 거대한 나무 하나를 만들고는 종료되어 버린 상상력 같은 숲.
고목은 오래된 나무. 고인은 죽은 사람. 너는 ‘고(故)’라는 한자에는 오래되었다는 의미의 글자(古)가 들어 있기 때문에 옛날 책에서는 친구와 같은 의미로 고인이라는 단어를 쓰곤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래된 사람과 죽은 사람과 친구. 지금 우리는 작은 뒤뜰이 보이는 우리 집 거실에서 친구들을 기다린다.
우리 집 뒤뜰에는 아주 커다란 나무가 있다. 골목을 들어서자마자 보일 거다. 너무 큰 나무여서 동네 사람 중 이 나무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길을 헤매게 된다면 그 큰 나무 있는 집 어딘가요, 물으면 된다. 너는 이런 식으로 길을 설명하며 이 집을 오래되게 만드는 중이다. 너네 다 죽고, 나도 죽고, 아무도 이 집 때문에 저 나무를 찾거나 가리키거나 바라보진 않을 때도 나무는 여전히 아무 데서나 다 보이는 높이와 크기와 형상으로 있을 거다. 그런 말은 하지 않는다. 그건 정말 크고 오래된 나무였다. 너무나 커다란 나무여서 집을 찾느라 어디를 얼마나 헤매도,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 여기에 오더라도 나무의 시간을 넘치며 오래될 수는 없었다. 고인들과 너와 나는 뒤뜰에 모여 다함께 그 나무를 껴안으려 애썼다. 축축한 나무껍질 냄새가 콧구멍을 다 적셔버리고 배와 가슴께에는 온통 나무 물이 들었다. 최선을 다해 양팔을 뻗어도 옆사람의 손과 나의 손 사이엔 공백이 생겼고, 이따금 서로의 손끝이 닿는 순간에는 안심이 되면서도 그것이 우리가 안을 수 있을 정도로만 큰 나무일까봐 두려웠다.
뒤뜰에는 오래된 감나무 한 그루가 있다. 나무는 특별히 크지도 특별히 작지도 않은데, 우리보다 훨씬 오래 산 그 나무를 크다고 부를 수 없는 것은 네가 오백 살쯤 된 세쿼이아를 안고 찍은 사진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뒤뜰에는 오래된 감나무를 휘감고 열린 감들을 터뜨리며 자라는 장미 넝쿨도 있다. 장미는 특별히 만개하는 계절도 특별히 앙상한 계절도 없이 시간에서 이탈한 것처럼 사시사철 애매한 개수의 꽃을 달고 있다. 모두 우리가 심은 것은 아니다. 그냥 날마다 아침을 찢으며 우리의 생활을 향해 가지를 뻗치는 것들.
뒤뜰을 향해 난 창틀에 물 한 컵이 올려져 있기에 마시려고 보니 그 커다랗고 오래된 나무가 꼭대기까지 다 들어가 있다. 뒤집힌 채로 물의 표면에. 내가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자 너는 마셔도 되는 새 물이라고, 오늘 아침에 떠 놓은 것이라고 한다. 물은 깨끗하고 투명하고, 먼지 한 톨 떠 있지 않다. 그렇게 커다란 나무가 거기 있는데도 도무지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손을 들어 물을 마신다. 수면은 일렁이며 나무를 헝클어뜨리다 입 속으로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