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변 테두리의 사랑
사랑은 둘이 둘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힘든 조건이다.
—알랭 바디우
당신은 이 장소의 부분이 된다. 이 장소의 일부인 당신이 움직인다. 움직임으로써 장소를 변화시키며. 기척과 동선을 발생시키며. 공기가 바스락거린다. 당신 주변으로 조도가 부서진다. 당신이 점유했다 놓아주는 숨의 내부로 냄새가 모여든다. 당신 귓가에서 잘게 잘게 조각난 소음들이 진동한다. 당신은 여기저기로 시선을 흩뿌리며 서성인다. 당신의 응시 아래에서 선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구부러진 모서리를 펴며, 닫힘을 해체하며, 안팎을 거부하며 유동하는 윤곽으로 움직인다.
선의 망설임. 선의 거침 없음. 선이 제자리를 벗어나려 애쓴 시간들. 선이 같은 자리를 맴돈 몸짓들. 선이 말하지 않은 것들. 끝내 말해진 것들. 아름다움을 향하려 하지 않는 마음. 온갖 생각들의 쑥대밭. 생각이 되기 이전의 동작들. 물질과 불화하기 이전의 생각들. 손끝에 붙은 마음의 마음대로 움직임. 선은 부드럽게, 어떤 것도 가두지 않는 방식으로 윤곽을 이룬다. 선은 가장 얇은 장소를 만들 줄 안다. 선은 닫힐 수 없는 가장자리다. 선은 움직임을 둘러싼 시간과 공기를, 기척을, 동선을 잡아채 고정한다.
당신의 시선 아래서 그것들은 다시 풀려난다. 당신은 부드럽게 생동하는 선들을 본다. 물질의 표면을 떠도는 선. 안팎의 구분을 무화시키는 선. 덩어리의 멈춰 있음을 깨뜨리는 선. 언제나 무언가를 향해 어딘가로 움직이는 선. 출렁이는 시간의 표면을 따라 유동하는 선. 모든 거리를 가로지르는 선. 자꾸 열리는 윤곽을 가진 선. 손의 망설임, 손의 더듬거림, 손의 의지, 손의 마음, 손의 운명, 손의 방향, 손의 물성을 숨길 수 없는 선. 당신은 선에 포개진 손을 생각한다. 당신은 움직이는 손을 본다. 움직임을 포착하려는 손의 움직임을. 선을 발생시키려 서성이는 손을. 정신과 물질 사이를 오가는 손. 벌려둔 거리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손. 의미에 사로잡히지 않는 손. 행위 자체만을 남겨두려는 손. 시간에 속한 사랑을 영원 속에 던져두는 손. 사랑의 가장자리를 헝클어뜨리는 손.
당신은 언제나 움직임을 향하는 선이다. 당신은 무한한 시간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끝없이 경계를 수정하는 움직임은 영원과 구분할 수 없다. 당신이 영원을 원한 적 없다 해도 당신의 어떤 부분은 영원에 포섭된다. 당신은 무너지는 몸의 경계를 느낀다. 당신은 쉼 없이 무너지고 복원되는 사랑의 모양을 본다. 당신은 경계를 수정하는 사랑의 테두리를 만진다. 당신은 조그맣고 단단하게 덩어리진 영원을 여기에 둔다. 소음이 영원의 둘레를 감싼다. 영원에 부딪히며 더 조그만 소음으로 쪼개진다. 몸 없는 냄새가 파편들을 에워싼다.
남는 것은 의미가 아니다. 선은 시간 바깥에서 움직이며 자신의 경계를 수정한다. 사랑의 부스럭거림이 공간을 채운다. 당신은 손안의 시간을 만지작대며 이곳을 빠져나간다. 유동하며 지속되는 영원을 본다. 사랑 안에서 언제나 부스럭대는 움직임을 본다. 선은 둘이 둘로써 존재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힘든 조건을 그린다.
다시, 당신은 언제나 사방으로 열려 있는 선을 본다.
선은 부드럽게 사랑의 표면을 흘러 다니며 테두리를 헝클어뜨린다.
사랑과 함께 미래의 사랑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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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 기획 전시 《무브망―조각의 선》연계 텍스트를 고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