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 엎지르기
우리가 알던 여름의 방식으로 새 여름이 넘쳤다. 물이 넘치고 둑이 무너지고 산이 흘러내리듯 모든 것을 떠내려가게 하겠다는 듯이 여기저기로 넘쳤다. 여름 꿈과 여름 기억 여름 이미지를 분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여름 이미지가 여름을 짓누르기 때문에 빈방의 귀신처럼 여름 기억과 여름 꿈이 서로를 혼동하며 서로를 놀라게 하며 시간을 내쫓으며 몸집을 불리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걸었고 버스를 탔고 비행기와 기차와 지하철과 자전거를 탔다. 우리가 아는 모든 방법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을 향해 몸을 옮겼다. 언제나 몸보다 먼저 도착하려는 눈과 함께 그랬다. 언제나 도착을 담보하는 움직임과 함께 떠나고 떠났다. 떠나기 위해 움직이는 동안에도 어딘가 도착하고야 마는 몸, 몸이라는 현실과 함께. 눈으로 더듬으며, 인상들을 연결하며, 이음매를 건너며. 낮에 배운 꽃의 위치를 잠이 반복하듯이. 1꿀벌은 낮 동안 꽃의 위치, 냄새, 색 등을 학습하며 활동하고, 밤에는 수면 중에 그 기억을 재생함으로써 학습을 강화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실험에 따르면 꿀벌은 수면 중 외부 자극 없이도 후각 단서나 위치 정보를 신경 패턴으로 반복하며, 이는 낮 동안 습득한 기억을 공고히 하는 기억 통합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잠 바깥의 냄새가 잠 속의 기억을 재생하듯이. 기억이 공간 단위로 빚어지며, 시간과 얽히며 구조를 건축하듯이. 기억과 포개진 지도 위를 떠나며 도착하며 맴돌며, 날아가듯이 흐르며, 흐르듯이 날아가며. 시간의 틈새에서 나는 냄새를 꽃으로, 꽃을 틈새로 착각하며. 떠나며 도착한, 도착하며 떠난, 캄캄한, 캄캄한 틈새에서
가이드는 날이 밝으면 아주 다른 곳이 될 거라고 했다. 아주 다른 것을 보게 될 거라고. 지금은 그냥…… 뭐랄까, 여러분 바깥이 검은 모자를 눌러쓴 것 같겠지만요. 모자의 짜임 사이로 얼비치는 피부 같은 것, 어렴풋이 눈 주위를 떠도는 입자들이 이 풍경을 이루는 모든 것인 듯하겠지만요. 우리는 밝은 날로 떠나기 위해 움직인다. 점을 이어 만드는 아주 부드러운 곡선을 상상하면서. 점 하나 또 다음 하나를 찍어 연결하듯이. 시간을 잇는 속임수를 연습하듯이. 점의 틈새로 굴러떨어지지 않기 위해 집중하면서.
날이 밝으면 볼 수 있는 것을 상상하기 위해 우리는 모자를 더 깊숙이 눌러쓴다. 우리의 바깥, 그 캄캄한 것이 모자를 쓰고 얼굴이라도 가진 것처럼 구는 것보다야 모자로 덮인 것이 우리의 머리통이라고 믿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만질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는 어둠이 되기 때문이다. 모자 조직 사이를 파고드는 햇빛을 상상하고, 아무리 눈을 감아도 붉음만이, 그러니까 눈꺼풀 안쪽이라는 구체성이 우리를 떠나지 않음을 생각하고, 그 구체로부터 우리의 몸을 실감하고, 바깥의 꽃 냄새, 반복되는 여름, 흘러내리는 땀방울, 입술 사이로 굴러떨어지는 짠맛, 벌들이 윙윙거리는 소리, 털로 뒤덮인 호박벌의 엉덩이 같은 것을 생각한다. 날이 밝으면 보게 될 아주 다른 곳을. 언제나 기억을 재료로 요구하는 상상을. 모자를 뒤집으면 시작될 장소를. 꿈이 꺼질 때 꺼지는 현실을.
모자를 벗었을 때 우수수 쏟아진 것은 검은 털로 뒤덮인, 죽은 벌들이었다. 꽃가루를 끌어당기듯 죽은 시간을 끌어당기는, 시간의 점 사이로 미끄러지는, 그런 틈새를 꽃이라고 착각하는 죽은 몸. 몸을 둘러싼 털이 일으킨 정전기로 군집하는 자연.
모자를 벗은 우리는 아주 달라진 풍경의 일부가 되어 날씨 이야기를 한다. 기억을 위한 망각을 비집어 들여다본다. 상처에 손을 집어넣어 총알을 꺼내듯이 그렇게 한다. 틈새에 박혀 있던 날씨를 꺼내고 아직 따뜻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그것을 씻어내듯이. 뜨거운 꿈에서, 꿈이라는 착각에서 밀려난 부분이 풍기는 냄새를 기억하듯이. 포개면 부서지는 지도, 날아드는 시간이 윙윙대는 소리, 벌을 밤으로, 밤을 벌로, 여름을 한철로, 어둠을 모자로 덮어쓰는 착각과 함께
우리는 기억과 도안을 혼동하기 위해
착각에서 떠오르는 도안을 위해 천천히 눈을 뜬다
창문을 실현하는 모자가 있다
날이 밝고
다른 창문을 보는 모두 다른 얼굴들이
다른 창밖의 서로와 얽히는 시선들이 있고
아주 다른 것은 환하다.
모자 안의 낯을 다 잊은 것처럼
부서지며 환하다.
- 꿀벌은 낮 동안 꽃의 위치, 냄새, 색 등을 학습하며 활동하고, 밤에는 수면 중에 그 기억을 재생함으로써 학습을 강화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실험에 따르면 꿀벌은 수면 중 외부 자극 없이도 후각 단서나 위치 정보를 신경 패턴으로 반복하며, 이는 낮 동안 습득한 기억을 공고히 하는 기억 통합의 일환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