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상태

투명성은 소리입니다. 투명한 표면 때문에 투명성 자체가 위협받지 않는 것, 내부의 간섭에 의해 반투명한 혹은 불투명한 물질로 변질되지 않는 것, 외부의 이미지를 드러내는 표면이 될 수도 없는 것. 이런 투명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오직 소리뿐입니다. 메아리라는 형식의 반영을 통해서만 중첩을 이루는 것. 자신의 메아리만을 비추는 표면인 것. 이것이 진정한 투명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느 날 새벽, 잠에서 깨 캄캄한 방 안에 누워 있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어둠 속에서 쉬이 잠들지 못합니다. 어둠은 제가 가진 모든 종류의 두려움을, 갖고 있지만 몰랐던 것까지 포함하여 투명한 주머니 안에 욱여넣고는 눈앞에 들이미는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어둠은 저에게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물론 알 수도 없는 무언가가 우글거리는 미지로 느껴지곤 합니다. 반대로 정말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거대하고 무한한 무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요. 어느 쪽이건 어둠은 제가 눈앞의 세계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부드럽게 감추고 있는 것들을, 두려운 살덩이들을 드러내는 투명한 피부입니다.

물론 투명한 물질에는 사람을 쉽게 매혹하는 힘이 깃들어 있지요. 유리컵에 담긴 깨끗한 물을 통과하는 햇빛이나 커다란 유리창 앞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데 무슨 수고가 필요한지 생각해 보세요. 하지만 투명한 피부라면…… 그 앞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건, 아니건 그것을 감당하는 데는 적잖은 힘이 들 겁니다. 아름다움이란 우리에게 자신을 감당하기를 요구하는 버거운 무게이기도 하니까요. 그러고 보면 우리가 매혹되는 것은 투명성 그 자체라기 보다 투명한 표면이 드러내는 내부, 혹은 투명한 표면이 비추는 외부, 혹은 그것들의 포개짐, 이 모든 것을 담보하는 투명한 물질의 정직성일지도 모르겠군요. 그 정직성 역시 일종의 환상에 불과할지라도 말입니다.

아무튼 저에게 어둠이란 오로지 두려움만을 담보하는 투명한 피부 같은 것이라서 그것과 온몸을 맞댄 채로는 잠들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제 아내가 옆에서 자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어둠의 투명한 피부가 감싸고 있는 것이 오직 한 인간인 것 같았습니다. 쌓이며 바닥을 감추는 물처럼, 한 사람이 어둠의 안쪽으로 쏟아져 출렁이고 스며들며 피부 안쪽을 가득 채우는 유일한 것이 되고 있었습니다. 물의 투명성을 생각해 보세요. 투명한 채로 쌓이며 깊어지는 것. 언제나 유동하며 부드럽게 형태를 바꾸는 것. 표면을 떠다니는 물질들을 내부로 가볍게 끌어들여 바닥으로 감추는 것. 투명한 피부에 감싸인 사랑 같은 것 말입니다.

어둠의 투명한 표피는 그런 식으로 우리를 감싸고, 우리의 표면을 부유하던 잠의 불순물들을 끌어들여 감추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날 새벽 저는 갑작스레 잠에서 깼지요. 어둠의 피부에서 저의 일부가 삐죽 튀어나온 것 같은 깸이었습니다. 저의 의식은 땀방울처럼 어둠의 투명한 피부를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턱까지 차오르는 깊이의 물속을 걷고 있는 것 같기도 했어요. 어둠은 저의 턱 근처를 어른거리며 이따금 입술을 적시고 있었죠. 천천히 눈을 깜빡여 보았습니다. 어둠은 출렁이는 한 겹의 두터운 물질이었습니다. 아주 거대하고 두꺼운 밀가루 반죽처럼 손으로 찔러보면 끝없이 부드럽게 손가락을 빨아들일 것 같았죠.

소리는 제가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에도 겹에 겹을 더하며 쌓이고 있었습니다.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의 움직임이 소리를 내며 밀집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아주 미세한 소리 하나하나가 장면을 전환하고 있는 것 같았죠. 각각의 소리들은 서로를 포개면서도 조금도 흐릿해지지 않았습니다. 뭉뚱그려진 하나를 향하는 방식으로 서로를 포개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투명한, 개별적인 몸으로 서로를 포개며 일렁이며 바닥을 감추고 있었죠.

각각의 겹들은 세계의 반영이나 반사가 아니었습니다. 소리는 세계가 잠시 멈추며 연속을 향해 기울어지는 순간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 우리의 눈이 감지하지 못하는 어둠의 간격들이 소리라는 형식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았어요. 소리는 우리가 속한 장면들, 장면들 틈새의 어둠을 감춰주며 움직이는 장면들을 투명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문은 지난밤과 마찬가지로 굳게 닫혀 있었는데, 투명한 막에 불과한 문일지라도 닫힌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중첩되는 소리들이 문을 투명하게 번역하고 있었죠. 문밖에서는 우리의 고양이가 투명을 의심하는 소리가 생성되고 있었습니다. 소리는 투명한 몸으로 움직이며 소리의 발생과 저의 몸 사이에 놓인 것들 역시 투명하게 만들고 있었지요. 소리 안의 동작과 풍경들은 감은 눈 안에서 시각적 대상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캣타워 두 번째 칸의 투명 플라스틱 침대. 고양이의 발이 그것의 존재를 확인하는 소리. 고양이의 동작이 자신의 안전을 의심하는 소리. 그리고 짧은 정적. 어둠 속 소리는, 소리의 투명성은 여전히 얼마간의 의심이 드리운 얼굴로 오목한 투명 침대에 몸을 둥글게 말고 누운 우리의 검은 고양이를 재생합니다.

투명한 소리들은 세계의 틈새에 누워 있다가 발견 당하는 순간 세계 전체를 감싸는 주머니로 변하듯이, 무한히 늘어나는 얇은 막처럼 넓어집니다. 하나의 기척이 세계를 다시 그리는 선분으로 움직이면서 다른 기척이 그리는 선과 만나 투명한 형상을 이룹니다. 소리의 투명성은 비가시성이 아니지만 눈앞의 현실에 대한 반영도, 재현도 아닙니다. 소리는 스스로 자신의 형상을 택할 수 있게 된 물처럼, 매 순간 자신의 형상을 조정하는 물처럼, 섭씨 칠백도 이상의 세계에서 다시 태어난 유리처럼, 그러니까 액체 상태와 부드럽게 유동하는 반고체 상태만을 오가는 유리처럼 움직입니다.

이윽고 부드럽게 흘러내리듯 전개되는 종소리. 지난여름 태국의 사원 앞을 지나다가 꼭 이것 같은 소리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사원 처마에 걸린 금속 모빌들이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부터 아주 미세한 시간차를 두고 차례대로 흔들리는 소리였죠. 이 아름답고 이상한 소리에 홀려들어 간 사원에서 들개에게 쫓겨 죽을 뻔하기도 했고요. 그건 투명한 몸으로 어슷하게 서로를 포개며 두께 없는 중첩을 만드는, 포개지지 않는 부분에 남겨진 여백을 누설하는 소리였습니다.

이제 발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목소리들. 웃음소리. 아이들의 즐거운 비명. 호루라기 소리. 언어로 작동하지 못하는 말소리. 규칙적인 기계음. 엔진 소리. 새 소리와 혼동되는 기계음. 기계음과 혼동되는 새 소리. 구름이 웅성대는 소리. 비가 준비되는 소리. ‘촘촘히’라는 단어. 열리지 않는 문을 작동시키려는 소리. 목재 가구가 찢어지는 소리. 유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눈을 가진 누구에게도 배열의 실마리를 들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완벽하게 불규칙한 배치는 투명성 안에서만 가능하지요. 투명성 안에서 웅성거림, 지저귐, 폭발은 모두 동등한 크기의 입자로 부서져 투명한 안개를 이룹니다. 투명한 입자로 이루어진 덩어리는 쪼개지지 않습니다. 투명한 겹들로 이루어진 두께는 분리되지 않습니다. 꿈 안으로 스며들고 꿈 바깥으로 흘러내립니다. 투명한 물질 역시 이미지 되기의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꿈에서 한 번도 소리를 들어본 적 없습니다. 꿈은 언제나 지나칠 정도의 이미지로 넘치는 현실이기 때문일까요? 꿈에서 소리란 소리 자체가 아니라 소리가 포함된 장면, 특정한 소리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로부터 돌출되는 상상, 소리에 대한 인상으로만 존재할 따름이죠. 꿈을 구성하는 건 기본적으로 감각이 소거된 장면들입니다. 감각들 역시 장면의 일부로서만 존재한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군요.

가령 손끝에서 뜨거움을 느끼고 깜짝 놀라 손이 닿은 자리를 바라보고, 무엇이 손가락에 화상을 입혔는지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손이 닿은 자리를 보면서 사후적으로 손끝의 뜨겁다는 감각을 구성하는 것이 꿈의 방식입니다. 소리는 꿈에서 감각의 차원에까지 투명한 층위로만 존재합니다. 불현듯 돌출되는 것이 아니라 장면에 언제나 드리워진 채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투명한 겹으로 존재하는 것이지요.

그 새벽, 제가 들은 소리들은 꿈의 소리가 존재하는 방식을 반전시킨 것처럼 있었습니다. 꿈의 소리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서의 투명함, 무엇도 반사하지 않는 투명한 껍질, 표면이라기보다 보이지 않는 피부에 가까운 것으로 장면 위를 어른거리고 있었다면 그 새벽의 소리들은 한 줌의 빛을 잡아채 반사하는 표면이 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볼 수 있는 세계란 소리라는 표면에 반사되어 어른거리는 어둠 배후의 풍경들뿐이었죠.

저는 지금 어둠을 담고 있게 되어버린 투명한 피막,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성 아래 누워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투명한 피막을 가질 수 있었던 어둠, 자신을 모두 내보이는 데 주저함도 두려움도 없는 어둠 아래 누워 있는 것일까요? 소리들은 겹에 겹을 더하며 여전히 투명한 채로 쌓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규칙적인 숨소리가 있습니다. 온도와 냄새를 가진 소리. 불투명한 이 소리가 어둠을 구성하는 소리들의 투명한 겹을 벌리며 아늑한 틈새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불 아래에서 미미하게 들썩이며 소음을 만들어내는 몸이 있습니다. 저는 두텁고 반투명한 어둠을 덮고 다시 잠에 빠져듭니다. 한 겹의 불투명한 소리를 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