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긴 신
이미지가 사라진 곳에 신이 있다지만
너에게 액자의 재료는 이미지다
어제는 유리를 배웠어 유리에 숨을 불어넣는 법을 숨을 유리 안에 가두고 갇힌 숨의 공간이 느리게 유리의 몸통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높은 온도에서 유리는 생명과 움직임과 의지를 가지게 됩니다 중력은 지구의 의지 불 속에서 유리를 흐르게 하고 유리는 유리의 의지를 가지며 저항하고 너는 너의 의지를 가느다란 손의 움직임으로 드러내면서 유리를 이리저리 돌려가면서 적당한 불이 유리에게 이를 수 있도록 바닥을 향하려는 유리의 기분을 유리의 죽음을 방어하면서
두 손이
너의 의지와 무관하게 떨릴 때
너는 신이 너의 손을 통과하고 있다고 믿게 된다
믿음의 이미지는 너를 재료로 한다
하나의 돌이 빚어지는 동안
그 위로 쏟아지던 무수한 시간의 빛
표면에서 튀어 오르거나 돌 속으로 잠겨들던
그 모든 빛의 입자들이 돌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았더라면
너는 전신거울 속의 너를 바라본다
세계라는 액자 속에 네가 담겨 있다
개 한 마리가 거울 속 장면을 침범하고 들어온다
검은 개에게 적당한 액자로서
너는 어둠을 떠올린다
자신의 모습으로 되돌아올 플라스틱의
산산조각 난 형상이라는 미래를
믿지 않았더라면
어둠은 세계와 검은 개 사이의 경계를 지워주기 때문이다
촉촉하고 반짝이는 코를 더 촉촉하고 반짝이게 그려내기 때문이다
어둠과 검은 개의 닮음이
어둠으로부터 공포의 이미지를 비워내기 때문이다
세계와 너는 닮은 구석이 있다
신을 닮은 액자의 재료가 무엇일지
네가 고민하는 동안
유리가 흘러내린다
너의 상상을 빗나간 형태의
투명하고 단단한 일그러짐
불을 벗어난 유리는 금세 식는다
차가운 표면 위에 굴절된 너의 얼굴이 비친다
온도가 이미지에 포함된다면
세계가 신에게 너무 차가운 장소라면
너는 손을 비빈다
두 손 안에서 짧게 지속되는 온기
그곳은 신이 거주하는 액자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면서
○ 이 시는 김선오가 김리윤의 시를 시대모사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