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해수면에 닿는 순간 바다라 불린다〉 작업 노트
언어는 물을 위치와 속성에 따라 여러 종류로 구별합니다. ‘비’, ‘강’, ‘바다’는 화학적으로 동일한 구조(H₂O)를 갖지만 언어 안에서 서로 다른 존재로 분화되며, 다른 공간으로 내리거나 흐르기 전까지 한 개의 이름으로 응고됩니다. 이 작업은 두 개의 서로 다른 물의 프레임을 한 영상 안에 병치합니다. 두 개의 물은 피부와 내장의 관계 같기도 하고, 액자와 그림의 관계 같기도 합니다. 물의 시간이 서로 교차하는 동안 두 개의 물은 서로 섞이고 흩어지며 내부와 외부를 교환합니다. 물의 방향, 물의 속력, 물의 질감이 화면을 뒤덮습니다. 물의 배경에는 장작 타는 소리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 소리가 암시하는 불길은 물에 대한 잠재적 위협입니다. 불의 곁에서 물은 증발됨으로써 이름과 형태를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삶에서 죽음으로 이행하듯 존재 상태의 변화는 공포를 수반합니다. 물의 공포는 영상 내부에 지속적인 긴장을 발생시킵니다. 불의 소리는 시간적 방향성에 혼선을 빚습니다. 장작 타는 소리가 내포하고 있는 물의 성질 변화 가능성이 과거를 향하는지 미래를 향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중첩되어 있는 물의 현재가 영속하지 않으리라는 암시를 지속합니다. ‘비는 해수면에 닿는 순간 바다라 불린다’라는 제목은 시집 『세트장』(문학과지성사, 2022)에 수록된 시 ‘익사하지 않은 꿈’에서 발췌된 문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