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꿈, 몸

영원히 잊히지 않는 하나의 꿈을 밀실에 봉인하기 위해, 지나치게 생생한 꿈으로부터 느닷없이 익숙한 침대 위로 내던져진 어느 아침의 황망함을 감당하기 위해 우리가 유구하게 택한 전략은 꿈과 현실의 관계를 공간적으로 이해하는 것이었다. 거실과 그곳에 딸린 작고 어두운 방이라는 이분된 형상으로 현실과 꿈의 모습을 스케치하는 동안 우리는 간단한 걸음만으로 꿈이라는 문 달린 방으로부터 현실이라는 밝은 거실로 순식간에 빠져나올 수 있으리라는 아늑하고 불온한 환상 속에 놓인다. 그러므로 방에서 벌어지는 일과 거실의 세계는 무관하다는 듯 구는 일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꿈속’이라는 관용구는 꿈이라는 탈현실 공간의 내부를 지시하는 것이지만 실상 우리의 몸은 밤새 푹신한 직사각형 모양의 잠자리 바깥으로 이탈하지 않을 것이다.

꿈이라는 불가해한 현상을 공간화 하는 행위는 꿈의 서사성(narrativity)을 시사하는데, ‘영화 속’, ‘소설 속’, ‘드라마 속’이라 표현하듯이 서사적 대상을 또 다른 공간, 일종의 다른 우주로 상승시키는 일은 우리의 오랜 사유의 틀이자 언어적 습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이 서사적이라는 진술은 절반 정도만 옳은 듯하다. 꿈 자체가 하나의 직조된 서사라기보다 꿈을 공유하고 전달하기 위해 우리가 서사라는 형식을 택했다는 사실에 보다 무게가 실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지난밤의 꿈에 대해 말하려 한다. 이는 꿈이 지나칠 만큼 개인적인 사건이라는 진실에 기인한다. 동행도 목격자도 없는, 완벽하게 오롯한 한 개체의 경험이 매일 밤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의해 발생한다면 그것에 압도당하지 않을 방도가 있을까? 그러한 압도됨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몸을 이완하기 위해 ‘말하기’라는 방식을 택하지 않을 수 있을까? 꿈은 그 타자성에 의해 서사화 된다. 우리는 꿈의 생산자들이지만 생산의 과정과 결과를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꿈은 개인의 내부에 발생하는 외부 세계다. 덕분에 우리는 꿈이라는 서사적 공간을 생산하는 동시에 관람할 수 있다. 창작자로서의 수행과 관람자로서의 수행의 경계를 부드럽게 무너뜨리는 장소가 있다면 그곳이 바로 꿈이며, 콜드슬립의 《흰 방과 두 명의 인간 그리고 심야를 위한 녹음》, 《어두운 홀과 여러 겹의 꿈 그리고 사적인 밤을 위한 녹음》 공연은 이 사실을 경험적으로 복원한다.

2023년 6월의 어느 밤, 나는 관객석과 무대가 구별되지 않는 어두컴컴한 공연장 구석에 놓인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기록하는 퍼포머 타이피스트의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었다. 공간의 풍경을 반사하는 동시에 투과시키는 반투명한 벽 몇 개가 천장에 걸린 채 길게 늘어져 있었다. 다른 퍼포머들과 관객들은 스크린의 존재를 부정하듯 영사되는 흔들리고 조각난 영상들 사이를 오가며 유령처럼 움직였다. 그들이 작은 손전등으로 만든 둥근 빛들은 비눗방울처럼 공간의 표면 위로 번져 갔으며 불규칙한 소음과 구별되지 않는 일렉트로닉 음악이 쉬지 않고 이어졌다. 나의 기록물은 현장에 설치된 프린터를 통해 즉석에서 인쇄되었다. 관객들은 인쇄된 글을 자유롭게 가져가 읽을 수 있었다. 나는 글을 읽는 관객들의 모습을 다시 기록하고 인쇄했다. 이 과정에서 시각적 주체와 대상의 위치는 재차 변경되었고 이러한 변위는 어둡고 모호하며 어지러운, 여러 겹의 꿈을 한 공간에 소집한 듯한 공연의 형식과 정합적으로 어울렸다. 움직이는 모두가 상연되는 꿈의 생산자인 동시에 다중 목격자였다. 새벽 내내 이루어지는 공연 시간 동안 어떤 관객들은 잠들기도 했다. 그들의 잠은 꿈을 복원하려는 공연의 내부에서 원본으로서의 꿈을 다시 생성하는 재귀적인 퍼포먼스처럼 보였다. 잠든 자의 신체가 위치한 곳이 재현된 꿈의 공간이기에, 그의 꿈에 의해 질료화 되고 있을 현실이라는 대상이 그곳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그에 따른 모든 감각적 산물―찢어지는 바이올린 소리, 불투명한 시야, 유령 같은 타자들의 형상, 차가운 바닥―의 영향 아래에 있기에 시간은 반복적으로 뒤틀렸다. 공연의 제목은 ‘헤테로크로니아(Heterochronie, 이시성(異時性))’였다.

《흰 방과 두 명의 인간 그리고 심야를 위한 녹음》, 《어두운 홀과 여러 겹의 꿈 그리고 사적인 밤을 위한 녹음》은 약 2주 간의 간격을 두고 상연되었다. 지난 12월, 짧은 시차를 두고 두 공연을 연달아 관람하는 동안 흰 방에서의 기억은 어두운 홀의 공간 위로 포개어졌다. 내가 나의 기억을 신뢰할 수 없고, 이 글에서 기술하는 사건과 대상들이 흰 방과 어두운 홀 중 어느 쪽에 존재했던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먼저 고백하려 한다. 어쩌면 이 기억의 혼선이 밀실-강당, 빛-어둠이라는 두 쌍의 대립항을 관객의 인식 속에서 흩뜨리기 위해 의도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변명과 은근한 기대를 함께 품어보기도 하면서.

《흰 방과 두 명의 인간 그리고 심야를 위한 녹음》의 공연장은 강북구 인수봉로에 위치해 있으며 찾아가는 동안 흔히 서울이라 여겨지는 풍경의 외곽으로 점차 밀려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공연 종료 이후에도 여전히 낯선 시공간에 놓여 있다는 감각은 한동안 상실되지 않기에 관객으로서의 경험은 실제 공연 시간의 앞뒤로 연장되는데, 이 여정까지 공연의 일부로 겪게 되는 일은 익숙한 것이었다. 매 겨울 같은 장소에서 진행되는 콜드슬립의 공연 《이인환각연쇄고리 – Find a Channelhead》의 관객이었던 적 있기 때문이다. 《이인환각연쇄고리 – Find a Channelhead》에서 관객의 수행이 크게 ‘연구원 3의 지시에 따라 이동하기’, ‘녹음된 꿈을 듣기’ 이렇게 두 가지로써 비교적 수동적이고 느슨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면 《흰 방과 두 명의 인간 그리고 심야를 위한 녹음》의 관객에게는 ‘공간에서 소리를 발생시킬 것’ ‘그 소리를 녹음할 것’이라는 보다 확고하고 능동적인 지침이 주어졌다. 공연의 완결은 관객이 공연장에서 손수 채집한 소리들로 믹싱된 트랙의 생성까지를 포함한다. 녹음기의 존재는 안온한 관객의 자리를 슬며시 흔들어 놓음으로써 공간에 미세한 불안과 긴장을 불어넣는다. 또한 《헤테로크로니아》에서의 잠처럼 관객의 신체를 고전적인 위치에 내버려두려 하지 않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약간은 가학적인 도구이자 계기다. 또한 녹음기는 현장의 소리를 기록할 뿐 아니라 마이크를 통해 수음된 소리를 관객의 귀에 꽂힌 이어폰으로 흘려보낸다. 녹음을 위한 도구라는 본질적인 역할과 더불어 공연장에서의 청취 경험을 관객 스스로 재구성하게 하는 양방향의 용도를 수행하는 것이다. 흰 방의 소리 환경(24,000 Hz의 사인파, 수집된 심야의 소리, 수집된 꿈들)에 추가 구성될 수 있다고 안내된 것들은 산책, 대화, 체내 소리, 꿈을 받아쓰는 소리, 꿈을 지금 읽는 목소리, 휘파람 등이다.

콜드슬립의 공연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구조는 관객에게 신체의 사용을 권장하거나 유도함으로써 사용된 신체, 즉 움직임이 발생한 몸을 매개하여 발생한 이미지와 사운드를 다시 공연의 일부로 규합하는 것이다. 이는 꿈이 신체적 활동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재차 상기시킨다. 공연의 가장 핵심적인 행위인 녹음의 배경이 되는 청취 환경 또한 관객들이 직접 자신의 꿈을 녹음하여 공연 전 미리 전송한 목소리들이 흘러나오는 여러 대의 스피커들로 구성되어 있다. 귀로 듣기에 잘 분별되지 않을 만큼 볼륨이 작지만 웅성거리는 소리들이 흘러나오는 스피커에 이어폰과 연결된 녹음기를 갖다 대면 소리는 선명하게 확대되어 고막을 울린다.

나는 꿈의 내용을 발설하는 다양한 굵기와 높낮이의 목소리들을 들었다. 여러 사람의 말투 속으로 녹아든 여러 개의 꿈이 다시 공간 전체에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야기는 유실되거나 왜곡되거나 과장되었을 것이다. 애초에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란 온전히 번역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점 안에 선을 구겨 넣듯이, 선 안으로 면을 찌그러뜨리듯이 꿈은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일그러져 있었다. 그러나 듣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듣는 것뿐이다. 나는 듣고, 들은 것들을 녹음하면서, 투명한 유리 판 위에 적힌 추가 구성물의 목록을 재차 살펴보았다. 산책, 대화, 꿈을 받아쓰는 소리, 꿈을 지금 읽는 목소리, 휘파람. 모두 공연장에 머무르는 퍼포머와 동시에 공유할 수 있는 소리들이다. 단 체내 소리만은 예외였다. 체내 소리란 일반적으로 가청 범위에 속해 있지 않으며 타자는 물론 스스로조차 감각할 수 없는 비체적 대상이다. 공연장에 비치된 청진기는 검고 둥근 형상의 낯선 기계와 연결되어 있었다. 청진기를 가슴에 갖다 대자 기계는 나의 심장 소리를 증폭해 들려주었다. 심장의 움직임에 맞추어 쿵쾅거리는 기계 위에 손을 올리면 거친 박동이 피부로 느껴졌다. 잘 인지되지 않는 미미한 소리, 그러니까 나의 살아있음을 입증하는 상징적이고 내밀한 소리가 공연의 어엿한 일부로 환원되는 순간이었다. 기계 장치를 통해 외재화 된 심장의 움직임을 청각과 촉각으로 받아들이면서 나는 작은 볼륨으로 웅성거리는, 불확실한, 몇 겹의 소음처럼 들리는 목소리들과 나의 심장 소리가 같은 층위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동시에 체내 소리는 퀴어한 것이라는 강렬한 인상을 받았지만 이 감각에 대해서는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잘 해명되지 않는다. 나는 어째서 체내 소리를 퀴어하다고 느꼈는가? 두꺼운 외투의 가슴 쪽을 열어 스스로 피부와 가장 가까운 곳에 청진기를 갖다 대는 행위가 지닌 에로티시즘 때문에? 외부와 교환될 때 비로소 감각 가능해지는 내부의 울림으로서 체내 소리가 내부와 외부라는 이항대립에 복무하지 않는 대상이기 때문에? 확신은 없다.

흰 방의 검은 기계를 어두운 홀에서 다시 마주했을 때에는 다른 사람의 심장 소리가 장치의 바깥으로 울려 퍼지는 중이었다. 나는 문득 들어서는 안 될 것을 들었다는 불경한 기분에 휩싸였다. 방금 전까지 녹음기에 대고 내가 꾸었던 꿈을 중얼거렸던 기억을 잊을 지경이었다. 누군가의 내장이 움직이는 소리와 마주했을 때의 사회적 지침 같은 것을 학습한 적 있을 리 없다. 통증이 아닌 소리로써 내장을, 그것도 타인의 내장을 경험하는 일에는 몸이 굳을 만큼 서툴렀던 것이다. 내장은 이름처럼 지나치게 내밀한 장소였다. 심장 소리의 내밀함이 꿈을 말하는 우리 목소리의 내밀함과 어떤 방식으로든 연관되어 있다는 감각 때문이었을까. 어두운 홀에서 나는 계속해서 꿈의 안쪽으로 끌려 들어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꿈의 바깥은 현실이지만 우리는 현실의 바깥을 꿈이라 여기지 않는다. 꿈이 현실의 깊은 내부라면, 더 깊은 내부로의 진입 또한 외부로의 탈출이라 여길 수도 있는 것일까. 어둠 속에서 질문들은 점점 커지는 목소리들처럼 증폭되어 갔다.

어두운 홀의 스피커들은 흰 방보다 훨씬 크고 다양했지만 그곳에서 재생되고 있는, 꿈을 말하는 목소리들의 질감은 유사한 것이었다. 바닥에는 어떤 말이든 적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흰 방의 침대 위에 누워 있던 퍼포머는 마찬가지로 어두운 홀의 한가운데에 놓인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그의 곁에는 심장 소리를 증폭시키는 검은 기계가 놓여 있었다. 나와 비슷한 강도로 어리둥절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어두운 홀의 내부를 걸어 다니며 소리를 채집하는 중이었다.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1부와 2부처럼 흰 방의 사물과 사건들이 왜곡되거나 비틀린 형상으로 어두운 홀에 다시 찾아온 듯했다. 어두운 홀은 흰 방이 꾸는 꿈일지도 몰랐다. 흰 방이 어두운 홀이 꾸는 꿈이거나.

꿈은 시각적 활동이다. 뇌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은 우리가 꿈을 꾸는 이유에 대해 뇌의 한정된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분투하는 감각 기관 중 밤 동안 어둠 속에서 활동을 멈추는 시각 피질이 이웃 영역들에 자리를 빼앗기지 않게 하기 위한 발명해낸 것이라는 가설을 내세운다. ¹데이비드 이글먼 저, 김승욱 역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 RH코리아, 2022, 74p. 지구의 자전은 촉각, 청각, 미각, 후각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지만 오로지 시각만이 매일 밤 다른 감각들에 점령당할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꿈은 우리의 시각 피질이 잠을 자는 동안에도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만들어낸 방편이며 뇌내의 영토 방어가 그 목적이다. 지나간 꿈을 돌이켜보면 장면은 선명하지만 소리나 냄새 등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이글먼의 가설과 더불어 《흰 방과 두 명의 인간 그리고 심야를 위한 녹음》, 《어두운 홀과 여러 겹의 꿈 그리고 사적인 밤을 위한 녹음》이 타인의 꿈을 경험하는 방식으로써 청각 경험을 우선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나는 콜드슬립의 공연이 현실의 일부를 꿈과 유사한 형질의 시공간으로 재구성하기에 머무르지 않고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꿈에 대해 진술하게 함으로써, 또한 타자의 목소리로 발화된 꿈을 ‘듣기’를 수행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말해진 꿈’과 ‘들리는 꿈’에 기대어 실체 없는 더듬거림을 지속하도록 이끌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를 통해 역으로 ‘연결’이라는 모호하고 공허한 관념을 매우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대상으로 부상시키고 있다고 믿는다. 타인의 꿈을 들을 수 없었다면 우리가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었을까? 우리의 꿈을 들어주는 사람 없이 우리가 어떻게 꿈꾸는 자신을 감당할 수 있을까?

언어는 근본적으로 구멍이 숭숭 뚫린 조악한 누더기의 형상이지만 그 누더기를 걸치지 않고서 우리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 꿈을 말함으로써 우리는 경험을 픽션화 한다. 꿈은 혼자만의 것이지만 픽션은 공유될 수 있는 대상이다. 이야기 위로 이야기를, 목소리 위로 목소리를 중첩시키면서, 말하고 기억하고 복원하는 행위는 인류라는 공동체를 존속해 온 한 가지 방식이다. 꿈을 거처 삼은 미시적이고 개별적인 서사에 대한 콜드슬립의 적극적인 옹호는 끝없이 지연되고, 누락하고, 실패하며, 오염되고 타성에 젖었다는 현대적 혐의에 시달리는 언어가 지닌 유구한 연결의 측면을 회복시킨다. 우리는 영원히 서로의 꿈을 경험할 수 없지만 그 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우리에게 말이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다행인가. 타인의 목소리를 통해 떠올릴 수 있는 꿈이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깊은 안도인가. 나는 말해지는 꿈을 통해 연결되는 몸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