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류와 백한 번의 이리 와
낡고 (여기부터 기억이다) 천장이 열려 있는 기차역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언제나 누군가를 기다렸다 ― 어느 날 그가 정말로 왔다는 사실이 지금도 놀랍다. 그 역은 백 년 전의 관제탑이었다가 십칠 년 후의 애플스토어로 순식간에 철골을 뒤틀며 변화하고는 했는데, 그 거친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내내 교복을 입고 고개를 숙인 채 선로 건너편에 서 있었다. 신기한 건 그가 끼고 있던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내 귀에도 들렸다는 거다. 우리 사이로 기차가 열두 대나 지나가는 동안에도.
내가 연극 배우였을 때 숲속 무대에 선 적이 있다. 무대는 작았고 그래서 넓은 곳과 이어질 수 있었다. 무대를 이루는 나무 데크의 왼쪽 구석이 움푹하게 부서져 있었는데 우리는 모두 부서진 곳을 밟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나를 다루어줘. 다루어줘. 무대 바닥이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클레망틴 마르셀이라는 배우의 대사였다. 그날 공연에서는 작은 사고가 하나 있었는데, 대사를 치려던 내 입에서 자장가가 흘러 나왔던 것이다. 클레망틴이 금세 쓰러져 잠들어주었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연극을 망칠 뻔했다. 모두 숨을 죽였다. 클레망틴, 무슨 꿈을 꾸고 있어요? 나의 애드립에 클레망틴은 깊은 숨소리로 답해주었다. 숲의 관객들은 클레망틴의 숨소리 리듬에 맞추어 웃었다. 하, 하, 하. 얼마나 사려 깊은 동료였는지.
먼 곳에서 클레망틴의 장례식이 열렸다. 영정 사진 앞에서 불렀다. “넓어지기 전에 이리 와.” 그 자장가의 첫 가사였다. 돌아오는 길, 낡고 천장이 열려 있는 기차역에서 억울했다. 무엇이 넓어진다는 건가? 이리 오라고 하면서 주소도 말해주지 않는 뻔뻔한 가사는 또 무엇인가? 나는 갑자기 흘러나온 자장가라는 놈에게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상복을 입은 배우 1, 2, 3이 나를 위로했지만 별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들은 이미 자신의 몫을 해냈고 좋은 잠을 자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더 열받는 건 그 자장가에 두 번째 가사랄 것이 없다는 것이다.
넓어지기 전에 이리 와
넓어지기 전에
넓어지기 전에
이리 와
이리 와
이리 와
이리 와
정말이지 아무 말이나 하고 있군. 그런데 왜 나는 이 자장가의 리듬에 맞추어 아직도 느린 걸음을 걷고 있는가? 나를 다루어줘 다루어줘 말하는 클레망틴의 입술은 어째서 셀 수 없는 낙엽으로 갈라져 떨어지고 있는가? 나는 왼쪽 구석이 움푹하게 부서져 있는 숲의 바닥을 보았다. 조심해, 조심해, 넓어지기 전에 조심해, 그런 가사로 망할 놈의 자장가를 이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지평선을 붉게 물들이며 황혼이 질 때 그 위로 늘어선 선로를 지나가는 열두 대의 열차. 그 너머에서 누군가 나와 같은 걸음으로 걷고 있음을 나는 알았지만. 그의 왼쪽 하늘이 언제나 부서져 있음을 알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