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손

수면은 무엇이든 제 몸에 포개어 현실의 살갗으로 만든다, 깨고 나서야 이 문장에 엎드린 채로 잠들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귤의 속껍질처럼 얇은 벽을 가진 잠이었죠. 꿈의 바닥은 누수된 현실로 축축했어요.

내가 뭘 봤는지, 그걸 본 사람은 나밖에 없었으니까. 설명하고 싶었어요. 아니요, 믿게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보여주고 싶었어요. 볼 수 있는 것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정확하게 설명하려 할수록 말은 저를 피하고, 미끄러지고, 말이 일종의 껍질이라는 환상을 부수려는 것처럼 융해되고 있었어요. 말에 깃든 망령, 말의 부채, 말의 불가능한 기억, 말의 얼룩, 말의 죽지도 못함, 말의 찢을 수 없음, 말의 우글거림, 말 안쪽의 중구난방, 동시(同時)의 더미에 불과한 말의 시간성, 말이라는 덩어리, 덩어리진 소음 그리고

그리고 시끄러운 손을 보고 있었어요. 이상하게도 내가 혼곤한 잠에 취해 있다는 것을 잠 속에서도 알 수 있었죠. 손은 시계를 그리고 있었는데, 손이 그린 초침 소리가 우글우글 꿈의 허공을 메우고 있었고요. 또 거기엔 본 적 없이 완전한 캄캄함의 사각형이라는 인상을 주는 창문이 하나 있었지요. 캄캄한 창밖에서는 더 캄캄한 개가, 창밖의 어둠보다 더 깊은 개 형상의 어둠이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어요. 그건 꼭 지우개 가루를 뭉쳐 빚은 공처럼 어둠을 끌어모아 뭉친 것 같은 밀도의 어둠이었는데. 깊고 짙은 개는 허공과 접촉함으로써 허공이라는 여백을 삭제하듯이, 창문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나는 법 없이 어지럽게 서성였죠. 어느 순간 개가 점점 작아지기에 드디어 여기서 멀어지는 중이구나, 프레임 바깥에도 세계나 시간 뭐 그런 것이 있겠구나, 움직임을 이동으로 사용할 수 있겠구나 안심했던 기억이 나네요.

손은 이제 시계의 형상으로 아침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창은 여전히 캄캄했지만 꿈이라면, 창문을 열 손을 갖지 못한 꿈에서라면, 모든 것이 오로지 보기를 통해서만 구성되는 현실이라면 손이 그리는, 움직이고 이동하는 현실을 믿을 수밖에. 따라가며 볼 수밖에 없는 법이죠. 그러니까 저의 눈은 카메라가 되어 시간의 일부로 있고 싶어 하는 것 같았어요. 어떻게든 함께 있으려고. 다시 창문 쪽을 보았더니 개는 창밖이 아니라, 프레임 바깥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프레임 가운데의 소실점을 향해 소멸하고 있었지요. 아니, 개 스스로 소실점이 되어가고 있는 듯도 했어요. 개는 서성이는 법을, 냄새 맡는 법을, 걷는 법을, 그리고 보는 법을 잊은 것처럼 텅텅 비워진 얼굴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속한 평면에 박힌 맹점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건 기억을 잃어간다기보다 시간이 몸을 이루는 물질이라는 증거를, 시간과 몸 사이의 교환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죠. 아무 것도 보지 않는, 보려 하지 않는 그 얼굴. 그건 작고 캄캄하고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점, 무엇도 넘칠 수 없는 선으로 둘러싸인 어두운 원 같았습니다.

잠에서 깼다고 느꼈을 때 나의 등은 누수된 물에 잠겨 있고 개는 수면에 자기 얼굴을 비춰보고 있었다. 아주아주 커다란 개였다. 나는 내가 개의 기억에 박힌 모래알처럼 작아졌다는 걸 알았다. 내가 보던 것이 개의 뇌 주름을 지탱하는 벽이었다는 것도, 시간이 있다면 벽에도 풍경이 발생한다는 것도.

여기까지가 제가 그날 꾼 꿈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리고 저는 개의 침이 볼을 온통 적시는 통에 정말로 잠에서 깼습니다. 정확하게 기록해 보려 했지만, 글자가 다음 글자를 미리 지우며 쓰이듯이 손의 움직임은 글자와 과거 사이의 연결도, 글자가 끌어당겨야 할 시간 사이의 연결도 끊어놓고 있었죠. 방은 우리 개가 물어 온 시계들로 발 디딜 틈 없었습니다. 볼이 축축했습니다. 볼을 닦으려던 손도 축축했습니다. 무엇이 어느 쪽을 먼저 적신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뭐라도 따뜻한 걸 좀 먹으려다 지글지글 프라이팬 위에서 끓는 기름을 보고 있자니 그만 입맛이 똑 떨어져 버렸어요. 대충 외투를 걸치고 선생님을 뵈러 갔죠. 간밤의 이상한 꿈들에 대해 여쭈었더니 선생은 너 귀신 될 꿈이다, 죽는다는 얘기는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 떡 하나를 쥐여줄 테니 가는 길 천변의 세 번째 버드나무 아래서 한입에 다 먹거라, 누구와도 나누지 말라. 이르셨는데 그만 그걸 개천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허겁지겁 손을 집어넣었는데 떡은 온데간데없고, 떡이 쌀가루로 돌아가듯이 손이 수면 아래서 조각조각 풀어지고 있었어요.

귀신은 살았고, 형체를 가졌으며, 어딘가에 있고, 어딘가에 있다는 것에 익숙하고, 어떤 의미에서든 꺼지고, 죽었고, 삶의 모든 해결되지 않은 것들, 삶의 결과로 인해 끊임없이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들입니다. 귀신에 대해서는 제가 아직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¹브루스 베일리(Bruce Baillie)의 인터뷰에서 발췌함.

선생의 말씀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지요

포개지는 모든 것을 동시에 들이닥치는 현실로 만드는

시간을 반죽해 넓게 펼쳐둔 물이라는 평면이 있고

단지 무늬일 뿐인 물결이 조각난 이미지로 분사됩니다

물소리                            조각

이

조

각

난 순간이

두려움에

사로잡힌

영원처럼

느껴진다는

소리 덩어리가 들렸습니다

허구의 모든 가능성을 영사하는 스크린으로서의 수면이 있습니다

차갑습니다 두렵습니다 비릿합니다 축축합니다 간지럽습니다

흩어진 손에 닿는 감각만은

사방을 찢어 틈새를 만들며

모든 깊이를 동원하며 들이닥치고 있었습니다

한 꺼풀의 물에는 반대편이 없습니다

물과 얼굴이 겹겹의 현실을 이루고 있습니다

자꾸 보려는 자에게 물은 깊이를 주지 않고

동시 안에서만 지속되는 영원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