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의 맛
호랑이와 내가 야외 극장에서 함께 영화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는 으르렁거리는 낮은 소리, 가볍게 짖는 소리, 거칠어진 감정을 억누르는 숨소리 등을 자막으로 띄워주고 있었다. 그런 자막을 나는 읽을 수 없었지만, 옆에 앉은 호랑이가 하얗고 긴 수염을 떨며 웃을 때마다 그래 너는 잘 이해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앉아 있었다. 라지 사이즈 팝콘에 앞발을 넣다가 종이 봉투를 찢어서 멋쩍은 얼굴을 하는 호랑이. 호랑이와 나의 발밑으로 쏟아진 팝콘 몇 알은 앞좌석 아래의 어둠 속으로 포르르 굴러가더니 사라졌다. 스크린에서 뻗어나온 빛이 우리를 지속적으로 덮치고 있었다. 호랑이에게 호랑이 모양의 빛이 끼얹어지고 나에게 사람 모양의 빛이 끼얹어질 때, 가끔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지만 눈이 마주치면 황급히 다시 스크린 쪽으로 고개를 돌려야 했다. 공포영화였을까 그러나 호랑이의 공포와 나의 공포가 달랐기에 그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다. 무성영화였을까 그러나 호랑이의 음성과 나의 음성이 달랐기에 그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다. 호랑이의 공포에 대해 호랑이의 음성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야외 극장에서는 모두 서로 다른 종의 일행과 둘씩 앉아 있었다. 가끔 자신의 동행을 잡아 먹는 커플도 있었다. 군데군데 피로 얼룩져 있는 의자 위로 스크린의 빛이 끼얹어졌다. 핏물 위에는 핏물 모양의 빛이, 내장 위에는 내장 모양의 빛이 끼얹어졌다. 내장만 홀로 남아 영화를 보고 있는 경우도 있었고 그 모습은 조금 쓸쓸해 보였다. 나는 호랑이를 바라보았다. 호랑이도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 중 누가 누구를 잡아먹을 것인가? 누가 누구의 피와 살이 될 것인가? 우리는 다시 서로의 눈을 피했고, 콜라를 각자 한 모금씩 마셨고, 헛기침을 했고, 몰래 송곳니를 만져보았다. 호랑이는 담배를 한 대 피웠고, 나는 맥주를 반 잔 마셨다. 우리의 동서남북으로 서로를 할퀴고 삼키고 찢는 일행들의 소리가 점점 더 자주 들려왔지만 우리는 그것을 영화의 일부로 받아들이려 애쓰고 있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직전, 호랑이가 포기했다는 듯 내게 목덜미를 내밀었다.
- 자.
- 아니, 괜찮아
- 자.
- 미친놈아.
- 자.
- 그만해, 제발.
으르렁거리며 나는 그에게 키스했다. 그의 입속에서 환영의 맛–피비린내에 가까운–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