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지우기
바다와 호수는 다르고, 같은 물이지만 전혀 다른 얼굴을 갖고 있고, 요즘 나에게 친숙한 쪽은 호수의 표정이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11월의 호수는 어둠과 안개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모호하고 의뭉스러운 풍경 덩어리의 안쪽으로 호수가 보였다. 초여름의 호수에서는 모든 것이 지나칠 만큼 잘 보인다. 살아 있는 것들과 죽어 있는 것들 모두. 근처에 오래 산 친구는 호수의 가장 깊은 곳에는 빠져 죽은 수십 구의 시체를 누르고 있는 돌무덤이 있다고 했다. 나는 아직 그 말이 농담인지 아닌지 알지 못한다. 잔물결은 잘못 송출된 텔레비전 주파수처럼 지직거리며 흔들리고 갈라졌다.
11월의 호수에서 백조를 처음 만났다. 흐릿한 수면 위에서 백조는 충격적일 만큼 크고 하얗고 이질적이었다. 백조만이 태양처럼 선명했다. 날개 안에 머리를 감추고 잠들어 있는 백조는 기도하는 맨손 같았다. 호수의 출렁임에 따라 부드럽게 흔들렸다. 물결을 따라 서서히 멀어지는 것은 백조였지만 왜인지 나는 기도가 멀어진다, 고 생각했다. 동행은 백조의 깃털을 주웠다. 개가 다가가자 백조는 짖듯이 화를 내며 개를 쫓아냈다. 작고 뾰족한 이빨이 줄지어 박혀 있는 백조의 부리 안쪽에서 호랑잇과 동물 같은 울음소리가 났다. 화를 내는 고양이와도 비슷했다. 지저귄다기보다 짖는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나는 왜인지 짖는 기도, 라는 말을 떠올렸다.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aen)이 ‘새의 카탈로그’ 음반에서 피아노 독주로 묘사한 새들의 다채로운 소리 틈에서 나는 개를 향해 짖던 백조의 울음을 골라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음반 전체를 듣다가 이게 백조의 소리다, 생각하고 트랙 번호를 확인하면 매번 다른 음악이다. 오늘은 어떤 트랙에서 백조의 짖음을 들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