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들
모두 다른 마음으로 모두 다른 창문을 보고 있다 해도
시작되는 시간이 있어
녹은 눈과 서리가 뒤엉킨 땅이 서걱거렸어
쌓인 눈을 본 적은 없지만 다 녹아버렸다는 걸 그냥 알 수 있었지
지면을 밟으면 튀어 오르는 기억이 없고
목적지에 대한 생각이 없고
궤적이 없는 시간
서로를 간섭하며 선을 그리는 배회가
시간이
부드럽게 우리 주위를 배치하고 있었지
우리 정말로 같은 것을 보려고 여기에 왔잖아
흰 밀가루 반죽을 미는 인물처럼
우리 사이의 간격을 얇게 더 얇게 펴내며 걸으려고
두려움에 얼굴이 생기는 것을
두려움을 견디기 위해
정교한 얼굴을 만들어내는 것을
이목구비 하나하나를 구두점 삼는 것을
눈으로 더듬듯이 보는 일을 그만두려고
너의 숨을 따라 쉬었지
우리와 우리가 세계라고 믿는 것
모두 잠에 감싸여 있다면
우리가 보는 것이 네 꿈의 안쪽이라면
창문 없는 벽
벽지의 어렴풋한 무늬들
벽에 어른거리는 사물의 그림자라면
그러니까 우리의 발이 둥그런 잠 바닥을
눈이 꿈의 내피를 더듬고 있다면
너의 숨이 나의 숨을
너의 걸음이 나의 걸음을
부드럽게 연속하고 있다면
연속하는 우리의 충돌이
충돌이라는 관계가
우리의 이름을
우리의 형상을
우리를 부르는 말들의 의미를
바꿀 수도 있겠지
나는 네가 쉰 숨의 한 가지 모양일 수도
너의 숨이 우리가 속한 리듬일 수도
덩어리진 시간을 잠시 벌려두는 틈새일 수도 있겠지
꿈이 영화를
영화가 꿈을 닮아서
우리가 쉬는 숨의 속도가
별안간 끼어드는 박새
지하철
까마귀
흔들리는 나무
구름
부서지는 서리
소리가 장면을 잠시 흔들 수도
장면에 입체를 더할 수도
장면을 회전시킬 수도 있겠지
너는 네 얼굴을 본 적 없는 것처럼
알지 못하는 것처럼 부드럽게
창문을 지어내듯이
공기와 섞이며 걷네
서로 다른 마음으로 서로 다른 창문을 보는
보여주고 비추는
포개지는 얼굴들이
서로를 섞으며 추상이 되어가는 얼굴들이 있어
네 숨이 나의 숨을
네 움직임이 나의 움직임을 반복할 때
우리의 움직임이 연속하는 풍경을 만들 때
시간이 우리 몸을 부드럽게 통과한다
우리를 꿰어둔다
우리가 우리라는 현실을
간격을
우연을
잇는 축을 부드럽게 흔들며
너는 몸을 턴다
축에서 떨어진 부러기가 침착하게 빛난다
다리 위의 사람들은 그 빛을 보며 아름답다 감탄한다
사진 찍는 사람의 머리카락과 같은 방향으로 구름이 흐른다
우리는 백지를
종료되는 잠을 상상할 수 있어야 했다
다리 위를 향해 손 흔들 때
우리의 가느다랗고 약하고 부드러운
얼마간 부서진 부분들이
구름과 미루나무
꼬리
담배 연기와 같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어
모두 얼굴이 없었어
더 알고 싶다
반복된다
같지 않은
같을 수 없는 반복이
우리의 몸이라는 현실이
창문들이 펄럭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