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과 뼈

여기서도 너는 빛보다 조용하지

모든 숨이 너를 향해 불어오듯이

털 사이로 이는

숨 각각이 갖는 방향

따뜻하고 둥그런 바람 소리가 시끄럽게 들렸지

이리 와,

집에 가자

목격하는 눈 없이도 점 찍히는 시작이 있다

머리통 둘

모자 안의 한숨

한숨 위의 애기 모자

귀까지 폭삭 잊히도록 깊은, 머리통을 속이듯이 부드러운 모자

파묻힌 앞섶을 침 냄새로 물들이면서 잠들 집이 있는 모자

달큼 쿰쿰한 냄새로 짠 모자

도망친 곳에 먼저 있는 모자

머리통에 쌓인 먼지의 부드러움을 부끄럽게 만들 만큼 더 부드러운 모자

모자 안의 허구들

허구들 안에서 살고 죽고 돌아오는 다시 살고 죽고 돌아오는

감사합니다 인사하며 고개 숙이는 머리통들

새에 대한 나뭇가지의 기억법과 나뭇가지에 대한 새의 기억법

지속되는

단절되는

유물처럼 장소를 빨아들이는 모자

유물처럼 장소를 전염시키는 모자

모자 안의 공간을 바깥으로 던지는 모자

옛이야기를 옮기는 새 입들

도망친 곳의 둥글게 닳은 계단

모자에서 굴러떨어지는 둥그런 소리들

페어빈둥 Verbindung

엔슐디궁 Entschuldigung

에리너룽 Erinnerung

베게그눙 Begegnung

네가 잃어버린 줄 알았던 잠

둥글게 말린 등과 발끝에서 시작되는 온기

둥지를 뒤집으면 모자

모자를 뒤집으면 도망친 우리

도망친 우리의

너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잠든 기차

잠든 이들의 꿈속 잠들지 않은 머리통에 씌어진 모자

모자 안의 잠 밖의 망가진 말들

한국말을 모르는 메아리의 깨끗하고 무구한 발성

새의 메아리로서의 나뭇가지의 떨림

우수수 떨어지는 눈

모자에 묻은 눈을 터는

손이 있고

모자를 뒤집으면 집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