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과 올
그냥 알아버린 거였다. 백조들이 뽑아낸 깃털이 사방팔방 흩날리는 한낮에, 네 머리에서 떨어진 모자가 그 깃털들과 같은 방향으로 날아갈 때, 이윽고 풀밭 위로 납작하게 착지할 때, 새하얀 앙고라 털실로 짠 모자, 그 모자의 입체가 네 머리통의 둥근 형상에서 풀밭 위의 나풀거리는 새하얀 털로 옮겨갈 때, 그러니까 내부를 잃은 껍질이 표면을 헝클어 입체를 이룰 때, 지면에 예외적인 움직임을 만들 때, 그 흩날림, 그 부드러운 양감, 그 가느다란 운동이 우리가 속한 풀밭 여기저기에 흩어진 깃털의 나부낌과 구별되지 않을 때, 계속 혼동되며 더 혼동되며 풀밭 위를 함께 구르며 멀어질 때, 모자를 줍겠다며 이 모든 것을 따라 달리던 네가 웃음을 터뜨릴 때, 백조의 숨이 너를 간지럽힌 듯한 웃음소리, 그 소리와 정전기 때문에 일어선 네 머리카락이 같은 리듬으로 흔들릴 때, 모자의 메아리로서의 정전기가, 네 머리통을 기억하려는 모자의 관성이 서로 닮은 움직임을 만들 때, 풀을 배경으로 일렁이는 앙고라 털실과 하늘을 배경으로 출렁이는 얇은 머리카락이 서로를 반영하는 표면일 때, 그런 리듬 안에 우리가 있다는 것을 느끼지도 못하면서, 누군가 깊이 들이마시고 내쉰 연기, 공중으로 흩어지는 담배 연기를 모자로 착각하기도 하면서, 허리를 구부리며 웃는 너의 머리통에선 입김 앞의 거미줄처럼 머리카락 흔들리고, 이렇게 깃털이 많이 빠져있는데 저 새들 모두 어쩜 땜통 하나 없이 말끔하지? 깃털과 백조 중 하나는 가짜 아니야? 계속 터지는 웃음, 백조들 점점 더 많은 깃털을 뽑아 풀밭을 채워가고, 계속 단 하나인 모자, 평평한 채로 나부끼는 모자 하나, 서로를 묘사하는 깃털과 모자, 그 흼의 일렁임, 우리가 진짜라고 느끼는 것, 이제 집에 갈까? 그래, 무심코 너의 머리칼 사이로 손을 넣었을 때 손끝에 닿는 피부, 앙고라 모자를 쓰기엔 좀 더운 날씨 탓에 촉촉하게 땀 맺힌 그 피부, 얇은 피부 아래의 단단하고 둥그런 뼈, 손가락을 간지럽히는 머리카락의 아니 머리카락에 실린 바람의 움직임, 우리의 부서진 웃음이 햇빛을 입자화하며 반짝이는 날벌레들과 뒤엉킬 때
그냥 봐버린 거였다. 모자를 뒤집으면 시작되는 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