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몸

비유 대신 착각을 사용할 수 있을까? 오늘 아침 개와 걷는 동안 이것이 요즘 내가 겪고 있는 질문이라 생각했고, 모든 것이 무성해지기 시작하는 5월의 허공과 풀숲은 소리 더미로 흔들렸다. 소리는 몸과 별개의 움직임을 가지면서도 반드시 소리의 출처인 몸을 담보하기에 우리의 눈은 언제나 이미 시작된 시작점을, 시작으로부터 달아나는 중인 몸을 눈으로 더듬으며 찾는다. 소리는 몸의 존재를 증언하는 동시에 몸을 숨긴다.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날아가는 새, 곧 쓰레기통에 담길 깨진 컵, 큰 소리로 웃으며 코너를 도는 중인 사람, 역을 벗어나기 직전의 지하철 같은 것들의 물질적 실체를. 겨울 동안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던 허공은 어지럽게 흩어진 소리들, 어렴풋한 좌표를 지닌 소리들로 구성된 임시적인 지형을 이루고 있다. 소리는 출현의 지점을 지시하는 것 같지만, 일종의 운동인 동시에 언제나 순간을 버리며 다음 순간을 향해 나아가는 파형이라서 끝없는 현재만을 가진다. 매 순간 사라지는 중인 지형. 위계도 규칙도 없이 서로 얽히고 포개지며, 각각의 선명함을 방해하지 않으며 움직이는 소리 입자들이 빚는 허공의 조형을 듣는다. 저쪽과 이쪽을 이으려는, 그러니까 길에 대한 욕망이 없는 지도를 본다. 소리는 새의 몸통 내부에서 일어나는 떨림이 외부에서 감각 가능한 형상으로 변환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새의 몸통 내부와 공기가 맺는 관계의 양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모든 것에 대한 최소한의 고정점인 새의 몸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진다. 소리는 우리의 좌표라는 것이, 위치라는 것이, 물리적인 우리의 몸이 차지하는 자리가 얼마나 부드럽게 출렁이는, 아주 짧은 순간만을 점유하는 것인지 알게 한다.

여러 개의 입구. 여러 겹의 흩어짐. 단일한 중심 없이, 분산되고 중첩되며 살아 있는 조형으로서의 소리. 새는 시린스(syrinx)라 불리는 두 갈래의 기관을, 우리의 몸은 후두와 성대를 통해 공기를 진동시켜 소리를 낸다. 목소리는 몸이 행하는 배출이라기보다 몸의 구조와 공기가 맺는 관계를 통해 생성되는 형상에 가깝다. 성대의 길이와 굵기, 후두의 모양, 인두와 구강의 크기, 치아와 입술의 위치 등 개별적인 신체의 구조에 따라 달라지는 목소리는 몸에 내재한 형상과 운동의 흔적이 물질화되는 매체, 일종의 구조적인 이미지라고 할 수도 있겠다. 몸—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사실 우리가 놓인 환경이 몸 내부와 관계하며 만든 공간을 따라 듣는 일이다. 우리는 소리의 변칙과 겹침, 떨림과 망설임 속에서, 파형을 더듬는 듣기를 통해서 그 공간을 짐작한다. 소리의 입장에서 보자면 몸 역시 고정된 형상이 아니라 외부와 내부의 조건에 따라 반응하는 연주체이며, 우리의 신체는 소리의 발생 조건이 되는 장치, 스코어(score)가 된다. 카세트테이프의 자기띠가 물리적으로 흔들리는 자기장을 통해 음악을 재생하듯, 소리는 몸이라는 하드웨어가 하나의 형식을 재생하고 발화하는 매체로 작동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연주와 함께 끊임없이 재조정되는 관계적 지도로서의 신체. 새의 시린스는 습도나 기온, 날개의 각도, 바람의 리듬 등 환경을 이루는 요인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며 소리의 패턴을 수정하고, 그러므로 새의 몸은 언제나 변화하는 공기와의 관계를 반영한 수행에 가깝다. 우리의 신체 역시 순간순간 생성되고 소멸하는 소리의 조건이 된다. 언어는 몸을 통과할 때 말의 형태로 실현된다. 우리가 목소리라 부르는 것은 사실 성대의 떨림, 입의 여백, 혀의 습도, 횡격막 반동 사이의 반응이다. 특정한 시간, 리듬, 긴장과의 접촉을 통해 지각 혹은 비지각 아래에서 일어나는 발생. 목소리는 곧 몸의 음향적 형상이며 (물론) 여기서 말하는 형상이란 시각적 외형이 아니라 공명의 질감, 소리의 부피감 등으로 구성된, 청각적으로 지각 가능한 조형물이다. 그것은 실시간으로 생성되며 말하는 이의 몸과 환경이 지닌 수많은 요소가 개입하는 물리적 조율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퍼포먼스에서 우리의 몸이 일시적으로 점유하는 공간은 목소리의 발생을 시간의 흐름 안에서 설치하고 현상하는 장치이자 물리적 조건이 된다. 이때의 공간은 단지 무대가 아니라 신체 내부를 외화하는 표면이기도 하다. 낭독은 시가 하나의 몸을 통과하며 재조립되는 일이다. 시가 비선형적인 풍경 안에서 출현하고 소멸하는 시간의 집합. 우리는 종이에 인쇄된 텍스트를 복제하거나 재생하는 대신 성대, 혀, 입술, 숨, 근육의 긴장 같은 몸의 조건을 통해 ‘동시’ 안에서만 작동하는 언어를 만든다. 소리의 출처가 아닌, 관계와 변화의 조건으로서의 몸. 음향적 지도이자 스코어가 된 목소리, 말하는 자의 내부가 외화된 형상인 목소리는 듣는 자의 몸에서 다시 한번 재—내부화된다. 몸은 발화의 환경이자 매질이며, 우리 내부의 환경과 외부의 환경이 서로를 조율하며 만들어낸 관계는 청자의 몸 안에서 다시 배열된다. 퍼포먼스는 언어를 외화하는 몸과 내화하는 몸이 서로의 위치를 교환하며 서로를 울리는 행위다. 새의 메아리로서 흔들리는 나무가 있듯이 화자의 메아리로서 미세하게 진동하는 청자의 몸이 있다.

명금류들은 자는 동안 노래를 연습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명금류의 일종인 얼룩핀치는 낮 동안 노래를 생성하는 신경 발화 패턴을 저장해 두고, 밤이 되면 이를 읽어내어 노래를 되풀이하며, 즉흥적으로 변형을 시도하기도 한다고 한다. 새들의 잠 안에서 벌어지는 이 운동을 소리를 뇌파로, 혹은 뇌파를 소리로, 아니면 몸 내부와 외부를 착각하는 사건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까? 이를 착각이라 부르기로 한다면 몸과 소리 사이에서 떨리는 이 착각은 비유보다 정확하게 진실을 지시할지도 모르겠다. 수면 중에도 소리가 연습 될 수 있듯이, 말은 깨어 있는 상태에서만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몸에 기록된 리듬으로부터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 소리는 의미에 앞서 몸에 저장된 패턴의 반복이자 즉흥, 몸에서 외화된 파형의 오래 지속되는 메아리이며 말은 그 반복과 즉흥 위에 잠시 붙는 얇은 껍질일지도 모른다. 5월의 풀숲은 거의 ‘끝없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연속적으로 흔들리고, 그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은 생성과 동시에 흩어진다. 그러나 이 소리들은 청자인 나의 몸 안에서 서로의 리듬을 혼동하며, 서로가 가진 시간을 착각하며 다시 형태를 갖는다. 기억되는 대신 메아리로 나의 내부를 미세하게 흔들며 재배치한다. 몸 안을 구르며 감각을 동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