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회와 궤적
저녁 산책. 지난주에 내린 눈이 곳곳에 잔류해 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마트에서 서른 걸음 남짓 더 걸어가면 연립 주택 단지와 접한 공터가 하나 있고, 공터에는 너르게 잔디가 깔려 있으며, 공터를 둘러싸고 있는 산책로와 벤치, 쓰레기통, 가장자리의 커다란 나무 몇 그루 같은 것들을 제외하면 공터는 말 그대로 텅 비어 있다. 우리는 주로 이곳을 느슨한 반환점으로 두고 저녁 산책을 한다. 특별한 것 없는 동네 어귀의 공터지만 조성된 정원도, 구획도, 울타리도 없는 이런 공터, 이런 텅 비어 있음은 서울의 밀도에 익숙해진 나에게, 높은 확률로 나의 개에게도 놀랍다. 이 텅 비어 있음, 무심히 시간과 기후를 드러내는 나무들, 공터를 가로지르며 걸었을 사람과 둥물들이 남긴 흔적일 것이 분명한 공터 가운데의 오솔길 하나. 오솔길을 기준으로 공터의 오른편에는 느닷없는 여우 동상 하나가 있는데, 그다지 크지 않지만 실제 여우의 몸집에 비하면 꽤 커다랗고 누가 언제 만든 것이라는 식의 안내판도 없어 어두울 때 멀리서 보면 거대한 흙더미나 그림자처럼 보일 따름이다.
공터 어귀에서 줄을 풀어주면 개는 한땀 한땀 땅과 식물과 허공의 냄새를 맡으며 걷는다. 냄새를 보는 것처럼, 아니 냄새로 보는 것처럼, 냄새로 모든 감각을 수렴시켜 세계를 감지하듯이. 허공의 사전적 정의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공간’이지만 개의 세계에서는 수많은 정보가 얼기설기 뭉쳐진, 자기 몸이 닿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시공간을 초월한 미세한 정보 입자로 구성된 더미일지도 모른다. 개는 우리보다 1만 배 예민한 후각 때문에 시간을 냄새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하니 개에게 이 공간은 여러 층위의 시간과 아주 넓은 범위의 거리, 그리고 한 공간에 쌓인 시간의 더께가 뒤엉킨 덩어리일지도 모른다. 개의 코에 닿은 허공은 칼끝의 케이크처럼 복잡한 단면을 드러내고, 개는 단면을 이루는 한겹 한겹의 시간과 공간 사이를 배회하고 있는 것일지도. 개의 얼굴에 닿는 겨울바람이 나의 얼굴에도 닿는다. 개가 보는 것을 나도 본다. 보는 개를 나도 본다.
그다지 크지 않은 공터인 것 같지만 비어 있음 때문인지 나의 개는 빠르게 작아지며 멀어진다. 이 공간에서 개의 몸, 개의 움직임은 갑작스럽게 공간의 크기를 드러내는 단위를 생성한다. 텅 빈 공간에서는 어떤 척도나 스케일이라고 할 만한 것이 그 텅 비어 있음 안으로 소거되고, 공간의 크기 역시 측정하기 어려운 추상의 영역으로 밀려난다. 대충 이만~한, 둥근 형태의 공터. ‘만’과 ‘한’ 사이 연음(~)의 길이와 리듬이 이 공간의 크기를 설명하려 하겠지. 연두, 이리 와. 개를 부르면 돌아오기까지 1분 남짓한 시간이 걸리는 크기의 공터.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다. 개와 함께인 경험이 겹겹이 누적된 공간은 개의 움직임이 소요하는 시간이 일종의 시간—스케일처럼 그 공간을 개별적인 시간 덩어리로 만든다. 이 공터는 시간을 거리로 확보하며 움직이는 듯한, 약 17킬로그램의 조그마한 시간—스케일의 측정값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개의 가슴줄에 달린 조명이 멀어질수록 선명한 푸른 빛을 낸다. 가장 잘 보이는 세 가지 색—빨강, 파랑, 초록—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이 야간 산책용 안전 조명이 포함하는 ‘잘’ 보이는 색은 가장 자연과 닮지 않은 색이기도 하겠지. 개는 자신의 몸 주변의 좁은 범위를, 생장이 멈춘 겨울 저채도의 겨울 잔디 위를 선명한 울트라마린블루로 물들이며 배회한다. 개의 등 너머 누군가의 베란다에서 아직 치우지 않은 크리스마스 장식용 조명이 같은 색으로 깜빡인다.
오늘 이 공터에는 여우 동상 말고도 두 개의 더미가 더 있다. 무슨 이유로, 어떤 과정을 거쳐 여기 있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대략 지름 80센치미터 정도의 눈 뭉치 하나와 그보다 조금 더 작은 것 하나. 눈과 작은 쓰레기들과 마른 잎과 가지와 흙이 뒤엉킨 것. 개가 감각하는 허공—개에게는 허공이 아닐지도 모르는 것—과 닮은 두 덩어리. 한국어 단어 더미는 ‘형상 이전의 물질 덩어리’라는 뜻이지만 덩어리진 물질이란 필연적으로 어떤 형상을 갖게 된다. 형상되기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한편 영어 단어 더미(Dummy)는 ‘모조품’, ‘진짜가 아닌 것’, ‘내용 없는 가짜 책’을 뜻하기도 한다. 아무튼 이 더미—Dummy들은 희미한 흰 빛을 내며 드문드문 쌓인, 얼어붙은 눈 위에 가만히 놓여 있다. 아마 누군가 길가의 눈을 치워 한곳에 뭉쳐둔 것이겠지. 실패한 눈사람처럼 보인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만들다 만 눈사람 더미(Dummy)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눈과 눈사람 사이의 단조롭고 선명한 연결과 이 연결에 대한 여러 기억이 내게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마주치는 대충 둥글다고 할 수 있을 만한 형태의 눈 더미를 내 기억은 곧장 눈사람과 연결 짓기 때문에. 여우상의 다섯 배쯤 되는 이 거대한 눈 덩어리는 여우상과 조금 떨어진 곳에 나란히 있는데, 개는 세 개의 형상 사이를 걷고 간격을 조정하며 오랫동안 냄새를 맡는다. 여우상은 어둡고 나머지 셋은 희미하게 흰빛을 낸다. 그중 가장 작은 흰빛 하나는 부드럽게, 불규칙적으로 움직인다. 흰 더미. 피와 살과 피부와 흰 털, 갈색 털, 수염 같은 것들이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로 배열된 더미. 이 형상의 움직임에서, 이 형상이라는 현실에서, 이 더미에 내재한 모든 것에서 참을 수 없는 사랑을 느낀다. 밤 속에서 희미하게 빛을 내는 것. 부르면 돌아오는 것. 지면을 차지하고 있는 네 개의 형상 중에서 의도도 결정도 우연도 빚어짐도 없는 단 하나의 형상.
1월에 쓰다 만 채로 버려두었던 이 글을 마무리하기 위해 4월에 메모장을 열었다. 무성해진 풀 위로 선명한 햇빛이 들이치는 낮의 공터에서 본 여우는 붉은 석재로 만들어져 있었고, 그것이 너무나 명료하게 돌덩이이면서도 정확하게 여우를 연상시키는 형태와 색을 지니고 있어 이상했다. 그 형상의 명료함에 비하면 나의 개가 지닌 형상이라는 것이 너무 희박하고 희미하게 느껴질 만큼, 이 희미함이 살아 있음의 조건이라고 느껴질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