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에서 기다리기
문지방도 땅이라고 할 수 있나. 문턱은 너무도 완고한 물질이라서 그것을 감싸고 있거나 거기 얹힌 것들을 모조리 무모한 주변부로 만든다. 딛고 있지만 땅을 느낄 수 없는 발. 발을 느낄 수 없는 몸. 위치를 설명할 수 없는 장소. 새로운 가능성, 무모한 공간, 무엇이든 될 수 있음. 멀리서 잔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흘리기 좋도록, 흘러내릴 수밖에 없도록 방향을 갖고 기울어진 문턱이었다. 매끄러운 길이었다. 걜 사랑하기는 너무 쉬웠어. 기울어진 방향으로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기다림으로써 무언가를 있게 만들며. 죽을 수도 사라질 수도 잊혀질 수도 없는 것으로 만들며.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기다리는 일은 쉬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견딜 필요 없는, 몸을 견딜 필요도, 누락되는 시간도 없는 일. 정말 착하다, 어쩜 이렇게 착할까.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 좀 봐. 너를 지나치는 사람들이 말했지만 너는 기다리느라 바빴을 뿐이다. 낭비할 시간이 없었을 뿐이다. 기다릴 수 있다면 네가 기다리는 바로 그것을 있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을 뿐이다. 될 수 있음. 부름 받을 수 있음. 떠날 수 있음. 돌아올 수 있음. 우리는 상태일 뿐이다. 시간이 흐른다. 많은 상태가 지나간다.
친절한 사람들이 떠 놓고 간 물그릇들 위로 시간이 쌓이고 쌓이고 혼탁하게 쌓이고,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를 있게 만드는 기다리기에 열중했다. ‘우리’의 규모가 커진 만큼 모든 것이 너무 많이 있게 되었다. 이것들을 너처럼 사랑할 이가 필요하니 신을 하나 만들어 볼까. 둘을, 셋을, 백을 만들어 볼까. 우리의 신들은 먹성이 좋았다. 정말 우리가 만든 것답게도. 온갖 진귀한 재료에 계란 물 입혀 구워내는 노릇한 냄새. 공기는 뽀얀 김과 연기로 사시사철 고소하고 탁했다.
문턱을 땅이라고 할 수 있나. 그러나 너는 그곳에 정원을 일구려 한다. 아직도 무언가를 있게 만드는 일에 열중한다. 정말 있는 것처럼 보여주는 것도 잘 기다리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한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고 땅도 아닌 문턱에 코를 파묻고 한 땀 한 땀 냄새를 맡는다. 여길 기어이 땅으로 만들겠다고 호미와 삽 대신 코를 들고 설친다. 누가 여길 인공 정원이라고 부르면 큰 소리로 콧등을 찡그리며 화를 낸다. 낙원을 상상하는 일이 그렇게 나쁩니까. 예, 그렇게 잘못됐습니까.
너는 착하게 기다린다. 문턱의 정원이 다 썩도록. 썩어 문드러진 잎사귀들을 발바닥에 잔뜩 묻히면서. 발바닥에 붙은 이파리 하나를 떼어 보여주면서. 이것 좀 보세요, 정말 다른 덴 없는 거거든요. 여기 사람들은 이런 거 구경도 못 했을 거거든요.
과연 모든 것이 본 적 없는 무언가였다. 공기는 공기대로 너무도 깨끗하고 명료해서 오로지 공기만이 우리가 딛고 선 땅인 것 같았다. 전에 없이 투명하고 맑았다. 바닥을 죄 없애버릴 것처럼 맑았다. 땅에 스며들어 땅과 뒤엉키고 하나 되어 마침내 땅을 없애버린 것처럼, 땅도 자신의 일부로 만들어버린 것처럼 맑았다. 얘야, 문지방 밟고 다니는 것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맑은 땅속에 벌써 묻혀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