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투명한 베개에서 네가 잠든다. 꿈속에 머리를 빠뜨려 잃는다. 거대한 물방울을 목에 얹고 복도를 걸어다닌다.
네게 해파리가 온다. 창을 넘어 온다. 빛이 너와 해파리 사이에서 흐물거린다. 투명한 세 번째 다리가 가리킨다. 저쪽으로 가소서.
너는 가지 않는다. 너무 투명해서 너는 거의 미래다. 해파리가 경고한다. 물을 뭉치지 마소서. 너는 흩어진다.
백 개의 다리가 백 개의 슬리퍼를 신는다. 해파리가 투명한 침실로 너를 안내한다. 당신의 꿈을 대신 꿔주겠소. 너는 고개를 젓는다. 알아서 할게요.
너는 알아서 짐을 푼다. 알아서 컴퓨터를 켠다. 푸른빛이 피부를 침범하게 둔다.
너의 살갗이 헝클어진다. 너는 알아서 만끽한다. 백 개의 무릎을 동시에 흔들며 해파리는 창틀에 앉아 있다.
너는 거대한 물방울에 숟가락을 밀어넣는다. 근육이 뭉친 것 같다.
얼굴로 너울이 밀려온다. 비 오는 날의 수평선 — 너의 가느다란 생김새.
파이프 뚫리는 소리가 총성 같다. 너는 너의 눈을 향해 뛴다.
아래는 해파리의 구술 기록이다:
자는 사람을 쓰다듬어 봤어. 머리도 쓸어주고 토닥토닥 해주고. 이럴 때면 어떤 꿈을 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꿈이 내 손바닥 밑에서 만져지고 있다, 그런 느낌. 꿈에도 하늘이 있고 땅이 있을 텐데, 지금쯤 그 하늘과 땅이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효율적이지 않니? 그냥 자는 사람을 만지는 것으로… 어떤 시공간을 쓰다듬을 수 있다니. 내 손길이 꿈의 흔들리는 전체가 된다니. 기억해, 이게 바로 꿈의 촉감이구나… 꿈의 온도는 인간의 체온이구나… 꿈에서 더위와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건 그래서일지도 몰라. 자신의 체온 안에서는 덥지도 춥지도 않을 테니까. 세계는 변온동물의 손 아래에서 뒤척이는 걸까. 사실 나는 그냥 이 사람을 내려다보는 중이야. 보기만 하는 중이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만지지도 않고 최대한, 최대한. 꿈속에서 오랫동안 살아있도록. 넘어져 다쳤는데도 아프지 않은 상처를 건드려보며 그곳이 꿈속임을 깨닫고도 놀라지 않도록.
너는 너의 꿈에서 해파리를 벗겨낸다.
다리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 촉수라고 한다.